대전 송촌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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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송촌동 유적 옹관묘 발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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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 고인돌 · 무덤군 관련 복합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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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 고인돌 · 무덤군 관련 복합유적.
내용

1995∼1996년 대전보건전문대학박물관에 의해 제1지구에서 고분군, 제2지구에서 주거지, 제3지구에서 고인돌이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해발 110m의 낮은 구릉의 밭 가운데에 1기가 있다. 개석(蓋石)이 3조각으로 파손되고 적석부가 교란되었으며, 지하구조인 돌널무덤[石棺墓]도 상부가 파실되었고 유물 또한 전무한 상태였다.

고인돌의 구조양식은 암반식(岩盤式) 개석 아래에 적석부를 형성하고 그 밑에 돌덧널식 돌널무덤[石槨式石棺墓]으로 구축된 복합형 고인돌로서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이는 인접한 비래동 고인돌군에 연결되는 청동기시대 하대의 고인돌로 추정된다.

주거지는 제1지구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인접한 높은 난형대지(卵形臺地)의 정상부에 제1호 주거지가, 남서면에 제2호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다. 제1호 주거지는 황토 석비레층 암반을 굴착해 설치한 수혈식주거지(竪穴式住居址)이다. 평면은 말각장방형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장변 264㎝, 단변 247㎝, 깊이 42㎝이다.

화재로 회진된 잔해층(殘骸層) 아래에서 주거지 유물 바닥층이 나타났다. 중앙부에서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연질도기계의 회갈색 우각형파수부원통형시루(牛角形把手附圓筒形甑) 1점, 회백색 격자타날문(格子打捺文) 우각형파수부환저광구호(牛角形把手附丸底廣口壺) 1점, 경질도기계의 회청색(灰靑色)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圓底短頸壺]가 출토 수습되었다.

기둥구멍은 남동쪽 내부 벽에 붙어서 직경 20㎝ 내외의 것이 2개씩 발견되고, 중앙부에 직경 10㎝의 것이 있다. 제2호 주거지는 제1호 주거지에서 남서쪽으로 2.7m 떨어진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집자리의 구조는 경사면에 황토 석비레층 암반을 ‘ㄴ’자형으로 굴착해 설치한 구덩식 주거지이다.

북동쪽 높은 쪽은 수혈벽(竪穴壁)을 이루고, 남서쪽 낮은 쪽은 벽이 없어 구지표면과의 경계선 정도만 확인되었다. 평면은 정방형(正方形)에 가까운 말각방형(抹角方形)이며, 규모는 장변 370㎝, 단변 320㎝, 깊이 10∼100㎝이다.

유물은 대체로 집자리 중앙에 배치되었다. 연질도기계인 대갈회청색(帶褐灰靑色) 우각형파수부시루(牛角形把手附甑) 1점, 연질적색토기계(軟質赤色土器系)인 적갈색 후육소형완(厚肉小形盌) 1점, 철겸편(鐵鎌片)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 바닥면은 평평하고 특별한 시설물은 없으나 다만, 남동벽쪽으로 저장공(貯藏孔)으로 추정되는 100㎝×50㎝ 정도의 부정형(不整形)의 구덩이가 있었다. 기둥구멍(柱穴)은 집자리 내부 바닥 북쪽에서만 밀집되어 발견되었다. 직경 20㎝ 정도의 것은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직경 10㎝ 정도의 것은 그 안쪽으로 배열되어 있다.

구덩식 주거지는 구조양식과 출토유물로 볼 때, 전형적인 삼한시대(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백제시대) 초에 이르는 주거양식을 보인다. 이 시대에는 전망좋은 구릉지대에서 주거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고분군은 주거지가 있는 구릉에서 연결되어 남주하는 구릉에 형성되어 있다. 움무덤 16기, 널무덤 2기, 독무덤 1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1) 움무덤

움무덤은 모두 16기로 이곳 고분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릉 정상과 경사면에 분포되어 있으며, 주축방향은 능선방향에 따라 북동·남서로 취하고 있다. 외부구조는 무봉토분(無封土墳)이고, 내부구조는 석비레층을 굴착해 화강암반을 그대로 묘상으로 삼았다. 평면은 세장(細長)한 말각장방형평이다. 묘광의 중앙부에 피장자의 시신을 안장하고 두향은 증거는 없으나 대체로 동북향이 아닌가 한다.

토기류의 부장은 양단벽쪽으로 부장하는 예, 짧은 벽측의 한편에 부장하는 예, 긴 벽측으로 붙게 부장하는 예 등이 있다. 그리고 철제품의 부장은 중앙부에 부장하는 예가 많다.

(2) 널무덤

널무덤은 제1호와 제13호 2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제1호 널무덤은 홀로 독립 설치되어 있으며, 장축방향은 대체로 북동·남서이다. 평면은 장방형(長方形)으로 네모서리가 모줄임되어 있다. 움의 크기는 길이 320㎝, 폭 130㎝, 현 깊이 30㎝로, 그 깊이는 상부의 변동으로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다. 유물은 경질도기계의 환저직구호 1점, 연질도기계의 둥군바닥짧은목항아리 3점, 철기편 2점이 출토되었다.

제13호 널무덤은 앞의 제3호 움무덤이 위치한 봉우리의 낮은 소등모양[牛背形] 구릉 정상부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묘광은 황토 석비레층 암반을 굴착해 설치했으며, 장축방향은 북서이다. 평면은 말각장방형으로서 북동 단벽쪽은 좀 넓고 남서 단벽쪽은 좁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290㎝, 폭 90㎝(북동 단벽: 98㎝, 남서 단벽: 77㎝), 깊이 15㎝이다.

북동 단벽쪽으로는 유물이 부장되고, 중앙부에서 남서 단벽쪽으로 널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 크기는 길이 200㎝, 폭 50㎝이며, 북동 단벽 폭은 50㎝, 남서 단벽 폭은 44㎝이다.

(3) 독무덤

독무덤은 제18호 1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묘광은 구릉 능선이 북서방향으로 돌아가는 위치의 남쪽 경사면에 설치하였다. 장축방향을 남동·북서로 해 주옹(主甕) 하나만을 매설한 단옹식(單甕式) 독무덤으로 장축 길이 80㎝, 단축 폭 50㎝이며, 현 깊이 20㎝ 정도이다. 유물부장은 없고 피장상황도 알 수 없으나 유아장(幼兒葬)이거나 세골장(洗骨葬)일 가능성이 있다.

(4)유물

이들 움무덤, 널무덤, 독무덤 등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부장유물은 토기, 철기, 유리 등이다. 토기는 질감이 연질적색토기계(軟質赤色土器系)인 것이 상당수 있다. 또한 도기계(陶器系)로 회청색의 경질도기(硬質陶器)가 근소하고, 적갈색·회갈색·회백색·흑갈색 등의 연질도기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형은 연질적색토기계로는 광구형(廣口形) 평저심발형토기(平底深鉢形土器), 원통형 옹형토기(甕形土器), 구형(球形)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 등이 있다. 도기계로 연질도기는 전형적인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 단지모양의 평저호, 완형(椀形)에 가까운 평저발 등이 위주이고, 경질도기는 환저직구호(丸底直口壺),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양은 소문(素紋)이 많고 타날문이 주류를 이루고 승석문(縄蓆紋)과 돌대문(突帶紋)도 보인다. 타날문은 심발형토기에 격자문(格子紋), 평행선문(平行線紋) 등이 보인다. 철기는 쇠낫 5점, 쇠화살촉 2점, 손칼[刀子] 4점, 기타 철기편 약간 등이 있다. 또한 붉은 색의 유리환옥(琉璃丸玉) 1점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이 고분군은 고분구조와 유물로 볼 때, 원삼국시대 말에서 백제 초에 걸쳐 형성된 분묘군이다.

송촌동 유적은 남방식 고인돌·구덩식 주거지·분묘군이 인접 분포된 유적지로서 곧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백제시대에 이르는 문화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비래동과 송촌동에 고인돌문화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원삼국시대 말에서 백제 초에는 구덩식 주거인들이 송촌동 구릉지대에서 생활했으며, 죽은 후 바로 인접한 구릉에 움무덤·널무덤·독무덤 등의 분묘를 구축하는 등 생시의 주거문화와 사후의 분묘문화가 동일장소에서 영위되고 있었다.

한편, 구릉 중복에서 고려시대의 돌덧널무덤이 발굴 조사되어 고려시대의 분묘문화의 양상도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참고문헌

「대덕구 송촌동유적 발굴조사에 대하여」(이은창·대전광역시시사편찬위원회, 『대전문화』5, 1996)
「대전 신대동·비래동 청동기시대유적」(성정용·한국고고학회, 『호남고고학의 제문제』,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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