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산 대통사

  • 종교·철학
  • 유적
  • 삼국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제26대 성왕(聖王) 당시 세워진 사찰.
이칭
  • 이칭대통지사(大通之寺)
유적/건물
  • 건립 시기527년
  • 소재지충남 공주시 반죽동 301-2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한국고대사)
  • 최종수정 2024년 09월 2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백제 성왕 때, 웅진(현, 공주시)에 세워진 절이다. 백제 성왕이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그의 연호(年號)인 대통을 따서 대통사를 지었다는 견해와 법화경에 나오는 대통불의 이름을 따서 대통사를 지어 무령왕(武寧王)의 명복을 빌었다는 견해가 있다.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제26대 성왕(聖王) 당시 세워진 사찰.

개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法興王)이 양 무제를 위해서 527년 또는 529년 웅진에 세웠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신라 법흥왕을 백제 성왕으로 바꾸어 이해하고 있다. 한편, 대통사는 양 무제를 위해서 세운 절이 아니고 백제 성왕이 대통불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찰로 보기도 한다.

역사적 변천

백제 성왕 때 세워진 대통사는 통일신라 이후에도 존속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의 기와도 출토되었다. 조선시대에 대통사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 기록에 공주 시내 금강의 지류(支流)인 제민천 위에 대통교라는 다리가 보이는데 다리 인근에 대통사가 있어 붙여진 다리 이름으로 보인다.

내용

『삼국유사』는 대통사의 대통(大通)을 중국 양나라 무제의 연호로 보고 대통사의 창건 연대를 대통 원년(527)으로 보고 창건 목적도 양 무제를 위한 것으로 해석한 것 같다. 하지만 양나라가 대통으로 연호를 바꾼 때는 527년 3월이기 때문에 백제에서 이를 알고 527년에 대통사를 세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삼국유사』는 대통 원년은 신라의 흥륜사(興輪寺)가 세워지고 있었으므로 대통사를 세울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중대통 원년(529)에 세워졌다고 하였지만 이 또한 중대통으로 연호를 바꾼 시기도 529년 10월이기 때문에 529년에 대통사를 세울 수 없다.

대통사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삼국유사』 원종흥법염촉멸신조이다. 원종은 법흥왕이고 염촉은 이차돈(異次頓)으로 이차돈의 순교(殉敎)로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흥왕의 또 다른 업적으로 웅진에 대통사를 세운 것을 들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의 대통사 기록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편, 대통사의 대통을 대통불이란 부처의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법화경』에 의하면 대통불의 다른 이름은 위덕불이고 아버지는 전륜성왕이며 대통불의 큰아들은 지적이고 막내아들은 법왕[석가모니]이라고 한다. 백제에는 전륜성왕으로 자처한 성왕이 있고 성왕의 아들은 위덕왕(威德王)이고 성왕의 손자로 법왕(法王)이 있고 지적이란 이름을 가진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도 남아 있다. 창건 목적도 무령왕의 명복을 빌고 새로 태어난 창(훗날 위덕왕)의 건강을 위해 세운 절로 보면서 창건 시기도 무령왕의 삼년상(三年喪)이 끝나고 창이 태어난 525년으로 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공주시 반죽동과 중동 부근에서 '대통'명 기와가 발견되었다. 현재 당간지주가 서 있긴 하지만 당간지주 부근을 발굴해 본 결과 대통사지였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백제 대통사지의 정확한 위치는 현 당간지주 북쪽 대통교 부근으로 추정된다. '대통'명 기와는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에도 발견되었고, 최근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 안에서 '대통사'란 명문이 적힌 벼루가 발견되기도 했다. 대통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대통교 건너 북쪽 지역에 대통명 기와가 다수 출토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대인 372년이고 최초의 절은 373년에 세워진 성문사(省門寺)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신라 최초의 절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528년(법흥왕 16)에 세워진 흥륜사지만 이 또한 위치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백제 대통사는 현재 알려진 백제의 절 중에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절이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유사』

  • 단행본

  • - 박대재 외, 『공주대통사지와 백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아연출판부, 2012)

  • - 이남석, 서정석, 『대통사지』 (공주대학교박물관, 충청남도 공주시, 2000)

  • - 조원창, 『성왕, 공주에 대통사를 세우다』 (서경문화사, 2021)

  • 논문

  • - 서정석, 「백제 대통사 위치에 대한 시고」 (『백제문화』 60,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019)

  • - 소현숙, 「성왕의 대통사 창건과 양무제」 (『백제문화』 60,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019)

  • - 조경철, 「공주 대통사와 동아시아 불교 - 『삼국유사』 '원종흥법 염촉멸신'의 비판적 검토」 (『백제문화』 58,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018)

  • - 조경철, 「백제 대통사와 『법화경』 「화성유품」 신앙」 (『한국사상사학』 68, 한국사상사학회, 2021)

  • 인터넷 자료

  • - 국가유산청(www.cha.go.kr)

주석

  • 주1

    : 강의 원줄기로 흘러들거나 원줄기에서 갈려 나온 물줄기. 우리말샘

  • 주2

    : 모든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 넓은 뜻으로는 주의나 사상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쓴다. 우리말샘

  • 주3

    : 백제 의자왕 때 사택지적이 남긴 비. 1948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존하는 것은 앞부분에 해당하는 56자이다. 우리말샘

  • 주4

    : 부모의 상을 당해 삼 년 동안 거상하는 일.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