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 이후 31개 본산 대표자와 중앙학림(中央學林) 학생들이 모여 조선불교를 일제에 예속화시키려고 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불교를 통한 민족의 각성, 조국광복과 독립을 쟁취하자’는 한용운(韓龍雲) 대선사의 뜻을 받들어 1920년 6월 20일 각황사(覺皇寺)에서 31명의 대표간사를 선출하고 조선불교청년회를 창립한 것이 이 단체의 첫출발이다.
1927년 전민족적 통일전선체인 신간회(新幹會) 결성에 조응하여 조선불교청년동맹(朝鮮佛敎靑年同盟)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신간회 경성지회장인 한용운의 지도하에 회원의 상당수가 신간회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30년대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략하면서 국내의 민족독립세력에 대한 탄압을 한층 강화하자 모든 항일운동이 지하로 잠복하게 되는데, 불교계에서도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비밀결사조직인 만당(卍黨)을 결성하고 조선불교청년동맹은 만당의 지도아래 활동한다.
1938년에 김법린 등 핵심당원들이 검거됨으로써 조선불교청년회 역시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실질적 활동이 중단된다.
해방 이후 1948년 11월에 김법린 등이 조선불교청년회를 재건하였으며, 1962년 6월 20일 문화공보부에 대한불교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종교단체로 등록하고 조직활동을 활성화하였다.
1970년 창립50주년 기념행사로 한용운 초대회장 추모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그의 불교유신정신을 받들어 팔만대장경을 축약, 번역한 ≪팔만대장경≫ 한글판 단행본을 간행하였다.
1979년 3·1절을 기하여 전국만해백일장 및 전국찬불가경연대회를 개최하였고, 같은해 한용운 대선사 탄신100주년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제1차 전국불교청년대회를 조계사(曹溪寺)에서 개최하였다. 1991년 소련불교전법 250주년 기념행사에 한국대표로 참석,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朝鮮佛敎徒聯盟) 대표단과 만나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남북불교교류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1997년 사단법인 등록을 마쳤으며 전국의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단위로 산하단체가 결정되어 있는데, 현재 15개 지구, 200여 개 지회와 2개의 직할 청년회(서울불교청년회, 조계사청년회)가 있다.
정기집회는 각 지회별로 개최하고 있으며, 매년 전국적인 규모로 청년지도자연수교육과 불교청년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만해대학’이 있으며 정기간행물로는 ≪청년불교≫를 발행하고 있다. 2000년 현재 회원수는 10만 여명에 이르고 있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45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