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은행 ()

근대사
단체
1898년 국립중앙은행을 목표로 한성에 설립되었던 은행.
단체
설립 시기
1898년
설립자
심상훈, 민영기, 유기환, 고영근 외
설립지
서울
소재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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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한은행은 1898년 국립중앙은행을 목표로 한성에 설립되었던 은행이다. 1898년 심상훈 등 20명의 발기인들이 황실과 합자하여 설립을 주도하고, 국립은행으로 설립하려 하였으나 설립 뒤 오래 지나지 않아 폐점되고 말았다.

정의
1898년 국립중앙은행을 목표로 한성에 설립되었던 은행.
설립 목적

일본인 금융기관이 조선에 진출함에 따라 이에 대항하는 국립은행을 설립하자는 논의는 일찍부터 있었으나, 그것이 구체화된 것은 갑오개혁 이후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근대적 은행이 설립된 것은 1896년 6월이며, 이때에 설립을 보게 된 은행의 명칭은 조선은행(朝鮮銀行)이었다.

조선은행은 김종한(金宗漢) · 안경수(安駉壽) 등이 당시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 심상훈(沈相薰) 등 정부 요인의 협력을 얻어 1896년 6월부터 창립 준비에 착수하여 동년 6월 25일에 창립을 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은행은 정부의 관리들이 주동이 되었으나, 은행의 조직은 순수한 민간 주식회사였으며 창립 당시의 자본금은 20만 원이었다.

변천 및 현황

조선은행이 창립된 후 1897년부터는 여러 민간 은행이 창립된 바 있었다. 이 시기에 설립된 은행으로 오늘에 알려지고 있는 것으로는 한성은행(漢城銀行) · 대한은행(大韓銀行) · 한흥은행(韓興銀行) 및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이 있다.

한성은행과 대한천일은행은 명칭과 경영자는 바뀌면서도 그 계통은 오늘에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그 밖의 은행들은 창립 후 영업이 부진하여 오래 존립을 계속하지 못한 것 같다. 대한은행은 장차 국립중앙은행을 목표로 하여 창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활동

1898년 9월 군부대신(軍部大臣) 심상훈, 탁지부대신 겸 경무사(警務使) 민영기(閔泳綺), 유기환(兪箕煥), 고영근(高永根) 등 20명의 발기인들이 황실과 합자하여 설립을 준비하였다. 이름은 대한은행이라고 칭하고 국립으로 하였는데, 고영근이 간사가 되었다. 그러나 대한은행은 창립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폐점되고 말았다.

의의 및 평가

비록 실패하였지만 대한제국 정부의 국립중앙은행 설립 노력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윤석범 외, 『한국근대금융사연구』(세경사, 1996)
조기준, 『한국자본주의성립사론(韓國資本主義成立史論)』(대왕사, 1977)
안병태, 『朝鮮社會の構造と日本帝國主義』(龍溪書舍, 1977)

논문

김윤희, 「1899년 대한천일은행의 설립배경과 목적-서울지역 금융환경을 중심으로」(『국사관논총』 96, 2001)
도면회, 「갑오개혁 이후의 근대적 금융기관」(『국사관논총』 77, 국사편찬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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