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자는 부처가 지닌 성덕과 길상을 상징하는 표상을 가리키는 불교 기호이다. ‘만’자는 그 변형까지를 포함하면 네 가지 형태가 있다. 길상해운을 뜻하는 슈리밧사, 우선(右旋)하는 머리카락 모양의 난디아바타라, 행복을 상징하는 스바스티카, 가득 찬 물병 모양의 푸르나가타(Purnaghata)이다. 현재 ‘만’자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권에서 불교의 상징 표지로 사용하고 있다. 부처의 공덕이나 마음을 상징했던 표지들은 후대에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와 관련된 모든 것에 길상과 원만을 뜻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만’자의 기원과 상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태양의 상징, 흐르는 물의 상징으로 보기도 하고, 둥글게 선회하는 모발의 형상이라고도 하며, 신령한 빛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 표시가 인도 불교에만 있었던 고유한 상징이 아니고, 인도 고대신화 속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비쉬누(Vishnu)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에서 이 표지는 유럽 ·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그 모양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에서의 유래는 『화엄경 華嚴經』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화엄경』 제48권에는 “ 여래(如來)의 가슴에는 훌륭한 분의 특징인 만자 모양이 있다. 이것을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고 부른다. 조화가 자재로운 마니보주(摩尼寶珠)로 장엄되어 온갖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가지가지의 광염을 둥글게 뿜어내면서 온 누리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온 누리를 깨끗하게 하는 묘음(妙音)을 내어서 온통 세계를 진리의 바다처럼 넘실거리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부처의 97가지 훌륭한 모습 중 제53번째의 특징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 표지를 인도에서는 슈리밧사(shrivatsa)라 했고, 만자의 다른 변형들을 난디아바타라(Nandyavatara) · 스바스티카(Svastika)라고 불렀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역경승(譯經僧)이나 주석가들은 만(萬)이라고 통일하여 부르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 표지를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화엄학의 대가인 혜연(慧苑)이다. 그는 『화엄경』의 한역본과 범본(梵本)을 대조한 뒤, “만자는 덕 있는 사람의 상(相)이요 길상만덕(吉祥萬德)이 모이는 곳이며, 한역본에는 17번, 범본에는 28번이 언급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표지는 『장아함경(長阿含經)』 등의 소승불교 경전에서도 몇 회에 걸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었으나, 현재의 동남아시아 남방불교권에서는 사찰이나 불교용구에 이 표시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대신하여 둥근 법륜(法輪)을 불교의 상징 표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만’자는 중국과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권에서만 유행하였던 불교의 상징 표지임을 알 수 있다.
‘만’자는 그 변형까지를 포함하면 네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길상해운을 뜻하는 일반형으로서의 슈리밧사, 둘째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머리카락 모양을 한 난디아바타라, 셋째는 행복이 있음을 상징하는 스바스티카, 넷째는 가득찬 물병모양을 한 푸르나가타(Purnaghata)이다. 이들 중 마지막 푸르나가타를 제외한 세 가지는 불경 중에 모든 부처의 가슴 또는 머리에 나타난 모발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불상의 미간에 표시되는 백호(白毫)가 털을 의미했던 것과 함께 고대 인도인 또는 서역인이 지녔던 풍토적 사고방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네 가지 형태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첫째, 길하고 성스러운 바다의 구름을 뜻하는 슈리밧사를 『화엄경』에서는 ‘금강계(金剛界)를 상징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때의 ‘금강’은 번뇌와 미혹을 능히 파괴하는 힘을 가진 부처의 지혜를 뜻하고, ‘계’는 본성을 뜻한다. 지혜를 본성으로 하는 정엄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슈리밧사를 풀이하고 있다. 때로는 ‘용맹을 상징하는 깃발’이라고도 하는데, 그 깃발이 가는 곳에서는 모든 악마의 군사들이 항복하고야 만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만자기를 불교의 깃발로 대신하고 있다. 그 밖에도 슈리밧사는 마음 · 삼매(三昧) · 반야(般若) 등의 뜻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둘째, 난디아바타라는 우선(右旋) · 희선(喜旋)으로 번역되는데, 원이나 각의 중심에서 아기자기한 곡선을 그리면서 하나의 통일된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난디는 기쁨이라는 뜻인 만큼, 그것은 도(道)를 이룬 부처의 기쁨에 찬 모습을 상징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스바스티카는 유락(有樂)으로 번역되며, 두 가지 형이 있다. 그 하나는 열 ‘십(+)’자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 끝에 장식이 달린 종과 횡 두 개의 기둥이 교차된 형태이다. 원어 스바스티카는 ‘낙(樂)이 있다’, ‘잘 있다’, ‘저절로 있다’ 등으로 풀이되며, 이들은 다 불심(佛心)의 공덕, 불심의 만덕(萬德) 중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들 의미를 축약하여 ‘성취’로 풀이하기도 한다.
넷째, 푸르나가타는 만병(滿甁)으로 번역되며, 비약적인 변형으로서 형태로는 만자와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의미로 볼 때는 동일한 뜻이 있다. 푸르나는 가득하다는 뜻이고 가타는 병이라는 뜻으로, ‘가득 차 있는 병’, 곧 공덕의 구족(具足)을 뜻한다. 원래 부처의 공덕이나 그 마음을 상징했던 이상의 표시들은 후대에 내려오면서 불(佛) · 법(法) · 승(僧) 삼보(三寶)와 관련 있는 모든 것에 길상과 원만을 뜻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만’자는 왼쪽으로 선회하는 것도 있고,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것도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의미를 달리하는 경우도 있으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