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숭원 호성공신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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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숭원 호성공신교서
박숭원 호성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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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1604년 문신 박숭원을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정의
1604년 문신 박숭원을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개설

198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주(義州)로 몽진할 때 왕을 호종하였던 신하 중 한명인 밀천군 박숭원을 왜란이 끝난 1604년(선조 37)에 호성이등공신으로 책록하고 그에게 내린 녹권이다. 녹권의 크기는 세로 37.0㎝, 가로 275.0㎝, 재질(材質)은 배지견본(背紙絹本)이다.

내용

1604년(선조 37) 6월 25일에 선조는 국난을 극복하는 데 공을 세운 신하들에 대해 책훈 대상자와 훈호를 이미 결정하였지만, 4개월이 흐른 10월 29일에 공신들에 대한 교서를 반급하였다. 이때 책훈된 공신의 종류는 세 가지였는데, 호성공신(扈聖功臣), 선무공신(宣武功臣), 청난공신(淸難功臣)이 그것이다. 이 중 호성공신은 서울에서 의주까지 줄곧 선조를 수종한 신하에게 내린 칭호이다.

당시의 일등공신은 이항복(李恒福)과 정곤수(鄭崑壽) 2명, 이등공신은 이우(李珝) 등 31명, 삼등공신은 정탁(鄭琢) 등 53명으로 모두 86명의 호성공신을 책록하였다. 박숭원은 2등 공신 31명 중의 한 사람이다.

녹권의 첫머리에는 공로를 찬양하는 교서(敎書)와 호성공신책록의 경과와 공신에 대한 포상의 내용이 있고, 다음에 등위에 따른 공신의 명단이 행간(行間)의 구획선이 없이 필사되어 있다. 사급 연월일 ‘만력 32년 10월 일(萬曆三十二年十月 日)’의 상단에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으며, 내용은 『선조실록 宣祖實錄』의 그것과 동일하다.

공신으로 책록된 후 박숭원은 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되고 밀천군으로 추봉(追封)되었으며, 그 후 1834년(순조 34)에는 ‘충정(忠靖)’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이때의 홍색(紅色) 금박지로 된 증시교지(贈謚敎旨) 1매도 있다.

이 녹권은 충청북도 청주시의 박종대(朴鍾大)가 소장하고 있고, 198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81년 보물로 지정된 김길통 좌리공신교서와 1979년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지정 해제된 충익공청난공신녹권 등에 비하여 사실(史實)을 실증하는 직접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박숭원 호성공신교서는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했던 공신들에 대한 포상 및 임진왜란 이후의 공신들의 변화상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대동야승(大東野乘)』
『청주읍지(淸州邑誌)』
『지방문화재지정신청서』(차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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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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