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형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우승지, 호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만절당(晩節堂)
  • 시호문헌(文憲)
  • 지구(之衢)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계유정난
  • 본관죽산(竹山)
  • 사망 연도1469년(예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문원부교리|병조좌랑|우승지|호조판서|영의정
  • 출생 연도1411년(태종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룡
  • 최종수정 2023년 04월 2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우승지, 호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박문선(朴文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영충(朴永忠)이고, 아버지는 병조참의 박고(朴翺)이며,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瀚)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34년(세종 16)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계공랑(啓功郞),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이 되었다. 1438년 의금부도사를 거쳐, 이듬해 감찰로서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1440년 승문원부교리(承文院副校理), 이듬해 병조좌랑, 1443년 사복시판관이 되었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사복시윤(司僕寺尹)이 되고 이듬해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1453년(단종 1) 판사복시사가 되었다. 이 해 계유정난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좌부승지 · 우승지를 지내고,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도승지에 오르고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듬해 이조참판으로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지고 1457년 호조판서로서 명나라 사신 진감(陳鑑)의 원접사(遠接使)가 되었다.

이어 형조 · 이조 · 예조의 판서를 거쳐 함길도도순찰사로 나가서는 부령진(富寧鎭)을 설치해 관방(關防)을 튼튼히 하였다. 1459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야인(野人)에게 관작을 준 일에 대해 힐책하러 나온 명나라 사신 진가유(陳嘉猷)의 원접사가 되었으며, 이어 주문 겸 사은사(奏聞兼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2년 이조판서에 오르고, 이듬해 예조판서 겸 대제학이 되었다. 이어 1464년 우찬성을 거쳐 1466년 우의정으로 승진하였다.

1467년 함길도에서 이시애(李施愛)의 반란이 일어나자 함길도존무사(咸吉道存撫使)가 되어 백성을 존무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어 예조판서를 겸하였다. 이 해 예종이 즉위하자 신숙주(申叔舟) · 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원상(院相)이 되어 승정원에 나가서 서무(庶務)를 의결했으며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책록되고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이 해 영의정이 되었다.

성품이 청렴했고, 시문에 능했으며, 과문(科文: 율법의 조문)에 특히 뛰어났다. 또한 사체(事體)에 통달하고 전고(典故)에 밝아 명나라 사신들의 접대에는 항상 뽑혔다. 그로 인해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단종실록(端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예종실록(睿宗實錄)』

  • - 『삼탄집(三灘集)』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해동잡록(海東雜錄)』

주석

  • 주1

    : 조선 시대에, 의금부에 속한 종오품 벼슬. 뒤에 종육품, 종팔품으로 나뉘었다. 우리말샘

  • 주2

    : 조선 시대에,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하러 중국으로 가던 사신. 동지와 정월이 가까이 있으므로 동지사(冬至使)가 정조사를 겸하였다. 우리말샘

  • 주3

    : 외국에 보내는 사신 가운데 기록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임진왜란 후에 종사관으로 고쳤다. 정사(正使)ㆍ부사(副使)와 함께 삼사(三使)로 불리며, 직위는 낮지만 행대 어사를 겸하였다. 우리말샘

  • 주4

    : 조선 시대에, 임금이 성균관의 문묘에 참배한 뒤 보이던 문과. 우리말샘

  • 주5

    : 조선 시대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우리말샘

  • 주6

    : 조선 시대에, 지금의 함경북도 북변(北邊)을 개척하여 설치한 여섯 진(鎭) 가운데 하나. 세종 때 둔 북방의 주요 방어지로, 양영만동보ㆍ무산보ㆍ옥련보가 여기에 속해 있었다. 우리말샘

  • 주7

    : 위로하고 어루만짐. 우리말샘

  • 주8

    : 조선 시대에, 왕이 죽은 뒤 어린 임금을 보좌하여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맡아보던 임시 벼슬. 우리말샘

  • 주9

    : 사리(事理)와 체면(體面)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10

    :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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