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계성(季成), 호는 임당(琳塘, 혹은 林堂). 화원(畵員) 출신인 백민환(白敏煥)의 아들이고, 화원인 백준환(白俊煥)의 조카이며, 이윤민(李潤民)의 외손자이다. 화원으로 80세에 가깝도록 장수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까지 올랐다.
1852년에는 철종어진을, 1872년에는 고종어진을 도사(圖寫)하였다. 그를 회상하며 지은 김석준(金奭準)의 시를 보면, 그는 40여 년간 화원으로 봉직하였고 임금 앞에서 묵련(墨蓮)을 그렸다 한다.
75세 때 백접병(百摺屛)에 산수, 인물, 영모(翎毛) 등의 그림을 그렸는데 필력이 강건하고 섬세하기가 머리털 같았다고 한다. 그의 「산수도병풍」(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안중식(安中植)의 화풍과도 연결되며, 역시 근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경향도 보여준다.
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을 계승하여, 「대기도(對碁圖)」, 「강안기려도(江岸騎驢圖)」,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등의 풍속화와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를 남기고 있다. 인물, 의습(衣褶) 등에는 김홍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배경의 나무나 바위 표현 등은 김홍도에서 탈피하여 근대화된 면모를 지녔다. 그러한 특징은 산수화에 잘 나타난다. 위에서 예로 든 유작 외에도 「선도봉선도(仙桃奉仙圖)」, 「산수인물영모첩(山水人物翎毛帖)」, 「주중희녀도(舟中戱女圖)」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