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西方山) 사이에 있는 조선시대 진묵대사가 중창한 사찰.
역사적 변천
이후 봉서사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고, 1857년(철종 8)에 봉서사에서 간행한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초의 의순(1786~1866)이 1847년(헌종 13)에 은고(隱皐) 김기종(金箕宗)으로부터 진묵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일대기를 적은 책이다. 진묵대사(1562~1633)는 법명이 일옥이고, 호가 ‘진묵’이다.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7세에 출가하여 봉서사에 오래 머물며 수행하였다. 그의 일생을 기록한 『진묵조사유적고』에는 여러 가지 신이한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김장생의 제자인 봉곡 김동준(1575~1661)과 교류한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유학자들과도 깊이 교류한 것을 알 수 있다.
봉서사에는 진묵대사와 해인사 대장경에 얽힌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 절에서 수도하던 진묵대사는 자주 해인사를 왕래하면서 대장경을 모두 암송하였다 한다. 하루는 진묵대사가 제자를 데리고 급히 해인사로 갔는데, 그날 밤 대장경각 옆에서 불이 났으나 도저히 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진묵대사가 솔잎에 물을 적셔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번 뿌리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불길을 잡음으로써 대장경판의 소실 위기를 구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근대 봉서사는 해방 후까지 많은 수행자들이 거처하는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완전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63년 이후 다시 중창되었다. 전쟁 이전에는 대웅전 · 명부전 · 나한전 · 삼성루(三聖樓) · 천왕각(天王閣) · 동루(東樓) · 서전(西殿) · 일주문(一柱門) · 상운암(上雲庵)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63년에 승려 호산(湖山)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고, 1975년에 삼성각을, 1979년에는 대웅전, 관음전, 요사, 진묵전(震默殿)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영각과 나한전, 산신각, 칠성각이 한 건물 안에 배치되어 있고 그 밖에 종루가 있다.
국가유산
국가유산으로는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진묵대사 부도를 비롯한 몇 기의 부도가 있으며, 1979년에 세운 일붕선시비(一鵬禪詩碑)가 있다.참고문헌
원전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
-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단행본
-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6)
논문
- 황의동, 「진묵대사와 유교와의 대화」(『한국사상과 문화』 56, 2011)
인터넷 자료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https://kabc.dongguk.edu)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완주문화대전(http://wanju.grandculture.net/wanju)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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