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옥 ()

진묵조사유적고
진묵조사유적고
불교
인물
조선시대 수많은 신이(神異)를 행하면서 불법을 전한 승려.
이칭
진묵(震默)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2년(명종 17)
사망 연도
1633년(인조 11)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
정의
조선시대 수많은 신이(神異)를 행하면서 불법을 전한 승려.
개설

호는 진묵(震默). 법명은 일옥(一玉). 만경현(萬頃縣: 지금의 0 김제) 불거촌(佛居村) 출신. 수많은 신이(神異)를 행하면서 불법을 전하므로 생불(生佛)이라 불렸다.

생애와 활동사항

7세에 출가하여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곧 암송하고 통달했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봉서사 주지는 그에게 신중단(神衆壇)에 향을 피우고 예경하는 소임을 맡겼는데 신중(神衆)들이 주지승의 꿈에 나타나 부처의 예경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사미 시절, 창원의 마상포(馬上浦)를 지나갈 때 한 처녀가 그를 보고 사랑을 느꼈다. 그녀는 환생(還生)하여 대원사에서 그의 시동, 기춘(奇春)이 되었다. 그는 기춘을 아꼈는데, 이것을 대중들이 비난하자, 그것이 애착을 떠난 삼매행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국수로 대중공양을 하겠다는 것을 알린 뒤, 기춘으로 하여금 바늘 한 개씩을 대중의 발우 속에 넣도록 했다. 그의 발우 속 바늘은 국수로 변하여 발우를 가득 채웠으나, 다른 승려들의 발우에는 여전히 한 개의 바늘만 있었다.

그가 늙은 어머니를 왜막촌(倭幕村)에서 봉양하고 있을 때, 여름날 모기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산신령을 불러 모기를 쫓게 한 뒤로는 이 촌락에 영영 모기가 없어졌다.

평소, 그는 곡차라고 하면 마시고, 술이라고 하면 마시지 않는 것을 계행(戒行)으로 지켰는데, 어느 날 한 중이 술을 거르고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이냐고 세 차례나 물었으나, 중이 그를 시험하기 위하여 모두 술이라고 대답했으므로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 중을 타살하였다.

그가 변산 월명암(月明庵)에 있을 때, 다른 승려들이 모두 외출한 뒤 홀로 『능엄경』을 읽다가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에 들어, 문지방에 놓고 있던 손가락이 바람으로 여닫치는 문에 피투성이인 것을 모른 채 며칠 밤을 보냈다.

또, 월명암에 있을 때, 불등(佛燈)이 매일 밤 목부암에서 비쳐왔으므로 그곳으로 옮겨가서 원등암(遠燈庵)이라고 개칭하였다. 이곳은 원래 십육나한(十六羅漢)의 도량으로, 나한들이 그의 뜻을 계발하기 위하여 불빛을 비추었던 것이다.

전주의 한 관리가 관물(官物)을 축내고 도망가기 전에 그에게 인사하러 오자, 그는 주장자를 가지고 나한당에 들어가 나한의 머리를 때리며, 그 관리를 도우라고 했다. 다음날 밤에 나한이 그 관리의 꿈속에 나타나서, 그를 구해주겠다고 하였다.

어느 날 소년들이 냇가에서 생선을 끓이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모두 먹은 뒤 냇가에 가서 용변을 보자 무수한 고기가 살아서 헤엄쳐 갔다.

상훈과 추모

봉서사에는 그를 기리는 부도와 조사전(祖師殿)이 있다. 또한, 초의가 편찬한 『진묵조사유적고』 1권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
『동사열전(東師列傳)』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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