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열전(東師列傳)』은 19세기 해남 대둔사(大芚寺) 출신의 범해 각안(梵海覺岸)이 1894년(고종 31)에 편술한 승려 열전(列傳)으로 삼국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고승전이다. 『동사열전(東師列傳)』에는 19세기 말까지 총 198명의 고승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승려들이며 편저자인 각안이 속한 편양파(鞭羊派), 특히 대둔사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동사열전(東師列傳)』의 저자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은 1820년에 전라도 완도에서 태어났고 1833년 대둔사에서 출가한 후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호의 시오(縞衣始悟, 1778∼1868)로부터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전수했으며, 교학을 배운 뒤 22년 동안 전국을 유력하며 여러 사찰의 강원(講院)에서 후학을 가르쳤는데 특히 『화엄경』과 『범망경』 강의에 뛰어났다. 『동사열전(東師列傳)』을 저술하고 2년이 지난 1896년 77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각안은 불교사에 큰 관심을 가져서 평생 3차례나 전국의 고적을 답사하고 사찰을 순례했으며, 저술로는 이 책 외에 『범해선사시집(梵海禪師詩集)』과 『범해선사문집(梵海禪師文集)』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주로 참고하고 인용한 자료는 승려들의 행장과 비문, 문집과 금석문 등이며 『택리지(擇里志)』, 『호남읍지(湖南邑志)』를 비롯한 지리지와 읍지, 『대둔사지(大芚寺志)』 같은 개별 사찰의 사지 등 다양한 자료가 활용되고 있다. 6권 3책으로 1894년의 필사본(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 1941년의 필사본(국립중앙도서관)이 전하며 1957년 동국대 불교사학연구실에서 등사하여 유인본으로도 펴냈다. 『한국불교전서』 제10책에 수록되었다.
『동사열전』 권4 끝에 실린 자서전(自序傳)에서 각안은 책의 저술 이유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부처님의 법이 처음 동국으로 유통된 이래 고구려, 백제와 신라,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전성 시대에는 제도적으로 승려들을 뒷받침해 주었다. 역사가 오래되면 승전 같은 기록도 있기 마련이지만, 여러 번 전쟁을 겪은 끝에 문서가 많이 소실되어 믿고 고찰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학인들과 함께 경론을 묻고 답하다가 남는 시간에 우리나라 승려들이 세상에 있을 때의 일들을 채집하고 선각자들의 행적을 갖추어 후학의 경계로 삼으려 한다.”
『동사열전』에는 삼국부터 조선 말기인 19세기 후반까지 총 198명의 고승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조선시대가 17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권1은 삼국시대의 아도(阿道)부터 고려 말-조선 초의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까지 20명, 권2는 고려 말의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부터 조선 중기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으로 이어진 태고법통(太古法統)의 법맥과 청허계의 주류 계보에 속한 20명이 수록되었다. 권3은 대둔사의 강학 종사(宗師)와 강사(講師), 부휴계(浮休系) 승려를 포함한 23명, 권4는 대둔사의 교학종장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부터 시작하여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강사와 선사 등 53명의 행적이 소개되어 있다. 권5는 19세기의 강사와 선사 등 48명, 권6은 편저자인 각안, 당시에 생존하던 이들이 대다수로 34명의 전기가 수록되었다. 본서에 수록된 고승들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승려들이며 편자가 속한 편양파, 특히 대둔사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18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역사와 문화를 포괄하는 전통 집성 작업이 활발히 펼쳐졌다. 불교계에서도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 『산사약초(山史略抄)』 같은 전등(傳燈) 및 불교 사서가 나왔고, 개별 사찰의 연혁을 모은 사지도 만들어졌다. 또한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삼국시대부터의 불교사와 고승들의 전기를 담은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를 지었고, 유학자에 의해 찬술된 것으로 보이는 『동국승니록(東國僧尼錄)』도 전한다. 『동사열전』은 다른 고승전류와는 달리 역경편, 유통편 등의 편목을 두지 않고 시대 순서로 승전을 수록하여 구성했다. 이 책은 조선 후기가 중심이고 또 편양파 위주의 구성이라는 한계를 가지지만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전 시기를 망라하는 통시적 승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