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봉평동 지석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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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봉평동 지석묘
통영 봉평동 지석묘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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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시도기념물.
내용

해안과 가까운 선상지의 선단부에 위치한다. 현재는 바닷가에서 17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해안선이 매립되기 전에는 바다에 접해 있었을 것이다. 해안가의 덮개돌에 배를 묶어 두기도 했다고 전한다. 주변은 택지로 개발이 진행되었고 고인돌이 위치하는 주변지역만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이 곳이 ‘봉평동 유물산포지Ⅰ’로 보고되어 있다. ‘봉평동 유물산포지Ⅰ’은 현재의 경작지에서 삼국시대 후기의 토기편과 도기류와 자기류, 기와류가 채집된다고 하는데 이곳이 청동기시대부터 최근까지 계속해서 생활의 터전으로 이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2기의 덮개돌이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북서쪽으로 120m 정도 떨어진 해평열녀비 뒤편에 1기의 덮개돌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도시화와 경작지 개간으로 인해 파괴되고, 현재 3기만 존재하지만 원래는 해안가를 따라 수십 기가 열상으로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규모가 큰 1호 고인돌 덮개돌의 평면형태는 말각방형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70㎝, 폭 230㎝, 두께 70㎝이다. 2호 고인돌은 1호 고인돌에서 북쪽으로 약 8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2호 고인돌 덮개돌의 평면형태는 심장모양이며 가운데가 오목하다. 재질은 화강암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65㎝, 폭 216㎝, 두께 60㎝ 이다. 해평열녀비 뒤편에서 발견된 덮개돌은 발견 당시 밭둑에 묻혀 있어 전모를 알 수 없으나 폭 약 120㎝, 두께 약 40㎝ 정도이다.

현재 두 기의 고인돌은 정비되어 주변에 울타리가 둘러져 있다. 덮개돌과 지표면 사이에 흙을 돋우어서 정확한 구조를 판단하기 어렵다. 고인돌이란 무덤방+고임돌+덮개돌(+깐돌)의 구조를 갖춘 무덤이다. 덮개돌은 일단 육안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 쉽게 드러나며 무덤방, 고임돌, 깐돌은 발굴조사를 실시해야 그 유무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현재까지 봉평동 고인돌은 바둑판식 고인돌로 보고되었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무덤방의 뚜껑돌과 덮개돌 사이에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고임돌[支石]이 있어야 하는데 현 상태로는 고임돌의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 덮개돌 아래에 돌이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덮개돌을 받치는 전형적인 고임돌이 아니라 무덤방 혹은 무덤방 위에 뚜껑돌을 놓을 때 흔들리지 않게 받치는 용도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봉평동 고인돌은 바둑판식 고인돌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뚜껑식 고인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고인돌은 일본 큐슈[九州] 지방의 고인돌과 유사하다는 견해가 있는데 덮개돌의 형태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봉평동에 고인돌 수십기가 열을 지어 분포했다는 것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에 대규모 취락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남해안지역 해안가를 따라 대규모 고인돌군이 분포한다는 사실과도 부합한다. 향후 이 일대에 대한 정밀 지표조사와 노출된 고인돌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된다면 고인돌의 구조나 성격, 지하에 다른 무덤방의 존재 여부 등이 밝혀 질 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유적분포지도: 통영시』(통영시 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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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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