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金是營: 1626~1680)의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기여(器汝), 호는 사암(思庵)이다. 아버지는 처사(處師) 김즙(金檝)이고 어머니는 성산 배씨 절도사 배설(裴楔)의 딸이다. 어려서 외할아버지 배설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만년에 창애(蒼崖)의 청계(淸溪) 가에 집을 짓고 ‘사암’으로 당호(堂號)를 지어 여생을 보냈다.
『사암집(思庵集)』은 5권 1책의 석인본(石印本)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즙의 아들 다섯 명의 글을 모아 놓은 『문소연방록(聞韶聯芳錄)』의 맨 마지막 권5가 이 책에 해당한다. 권수에 이헌주(李憲柱)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큰형 김시형(金是瑩)의 후손 김근희(金瑾熙)의 후지(後識)가 실려 있다.
김시형 등 다섯 형제의 후손인 김국희(金國熙), 김근희 등이 선현의 문집을 합간(合刊)하기로 발의하여 유문(遺文)을 수습하고, 같은 가문의 김동섭(金東燮)에게 편집을 부탁하여 5권 1책의 원고를 만들어 이를 1977년에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시(詩) 45제 78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타인과의 교류와 그 정감을 노래한 작품이 많은데, 특히 형제들과 주고받은 것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례로 「기주동헌설야동유(基州東獻雪夜同遊)」 6수는 영주군수로 재직하던 셋째 형 김시영(金是榮) 등 가족들과 서로 수창한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이 작품들을 모아 『풍창수창록(豊昌酬唱錄)』이라는 수창 시집을 엮기도 하였다. 이외에 이유전(李惟銓) 등에게 지어주거나 차운(次韻)한 것도 많이 보이며, 그 외의 작품들은 일상의 정감을 차분한 어조로 노래한 것들이 많다.
잡저(雜著)의 「유룡기사갑회록(遊龍起寺甲會錄)」, 「종유(從遊)」는 모임에 참여한 인원의 명단을 정리한 것이다. 제문(祭文) 10편은 장인, 장모, 형제 및 조카 등 주로 가족들을 위해 지어진 것들이고, 조카를 대신해 지은 것이 한 편 있다. 부록(附錄)에는 제문 1편을 비롯하여 저자에 대한 묘갈명(墓碣銘),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이 수록되어 있다. 묘갈명은 박종섭(朴鍾燮), 행장은 후종손(後從孫) 김종섭(金鍾燮), 묘지명은 송종섭(宋宗燮)이 각각 지었다.
이 책은 17세기 문인 김시영의 삶과 사상, 문학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그의 다섯 형제는 당대에 뛰어난 인물로 명망이 있었던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이들의 학문적, 사상적, 문학적 면모를 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