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한(白慶翰: ?~1812)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자는 자점(子漸), 호는 부호(鳧湖)이다. 아버지는 백선양(白善養)이며, 어머니는 해주 노씨 노현진(盧玄軫)의 딸이다. 정주(定州) 출신으로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창의격문(倡義檄文)을 내어 의병을 모아 반군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당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저항 활동을 하다 1812년 1월에 피살당했다. 사후에 호조참판에 추증되고 표절사(表節祠)에 배향되었다.
저자의 증손인 백예행(白禮行), 백인행(白仁行) 등이 승도선(乘道璿), 안곤(安坤) 등과 함께 저자의 글을 수습하여 편집하고, 저자의 제자인 노덕제에게 교정과 더불어 발문을 부탁했다. 서문이 작성된 1906년에 예동서옥(禮洞書屋)에서 간행이 이루어졌다.
권1에는 부(賦) 2편, 시(詩) 40제(題) 49수, 서(書) 12편이 실려 있으며, 시는 문체별로 분류하여 수록했다. 부는 주희(朱熹)가 어릴 때 『소학(小學)』을 읽고 쓴 8글자를 주제로 한 「효경서팔자(孝經書八字)」 등이 있다. 시 중에서 오언장편(五言長篇)인 「유풍악(遊楓岳)」은 저자가 41세 때인 1801년(순조 1) 동생 백경해(白慶楷)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서 이이(李珥)의 시에 차운해 지은 것으로, 스스로 시상이 끊임없이 떠올라 하루아침 만에 완성했다고 술회한 자신작이며 300구에 달하는 장편시이다. 서는 동생 백경해와 주고받은 것이 10편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그 밖에 승응조(承膺祚)에게 보낸 편지, 홍경래의 난 때 창의(倡義)하며 지은 격문(檄文) 등이 실려 있다.
권2는 서(序) 2편, 축문(祝文) 1편, 제문(祭文) 8편, 유사(遺事) 2편, 잡저(雜著) 9편, 상량문(上樑文) 2편이 수록되었다. 서는 가승(家乘)에 부친 서문, 저자의 부호재(鳧湖齋)에서 학계(學契)를 조성하고서 만든 절목에 부친 것 등이 있다. 제문은 백수회(白受繪), 이석초(李錫初), 신점(申漸) 등을 위해 지은 것들이다. 유사는 조부와 부친을 위해 지은 것들이다. 잡저 중에서는 1789년(정조 13)에 쓴 「춘첩(春帖)」, 정단몽(程端蒙)을 모방하여 자녀들을 위해 성리학의 이론을 정리한 「방정단몽자훈속수편시제아(倣程端蒙字訓續數篇示諸兒)」 등이 눈에 띈다.
부록 권1에는 연보(年譜)가 수록되었다. 권2에는 저자와 관련된 다양한 개인 기록 및 공문서, 제문, 뇌사(誄詞) 및 묘도문자(墓道文字) 등이 수록되었다. 모두 저자의 생애를 살피는 데 유용한 자료로, 전은 김우순(金愚淳), 묘지명과 신도비명은 홍직필(洪直弼)의 작품이다. 권3에는 행장(行狀), 시장(諡狀), 유사(遺事) 등의 관련 기록들이 수록되었다. 행장은 오희상(吳熙常)과 홍병철(洪秉喆) 두 사람의 작품이 있고, 시장은 조두순(趙斗淳)이 지었다. 권4에는 사후 그에 대한 표창(表彰)과 관련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문인 백경한의 삶과 사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깊다. 특히 저자가 홍경래의 난 때 창의하여 죽임을 당했던 만큼, 이 시기 유학자의 명분론과 그 실천에 있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