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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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金廷漢)이 지은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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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김정한(金廷漢)이 지은 단편소설.
내용

김정한(金廷漢)이 지은 단편소설.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으로 작자의 초기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1936년 1월 9일부터 23일까지『조선일보』에 실렸고, 1975년 삼중당(三中堂)에서 발간한 『김정한단편선(金廷漢短篇選)』에 수록되었다.

가뭄이라는 자연적 재난과 맞서기에 앞서 가혹한 소작제도 및 일제의 통제에 시달리는 사하촌 소작 농민의 상황을 예리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민족 운동의 계몽성 내지 사회주의 목적성을 표방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간 농민소설이다. 어느 해 여름 가뭄이 계속되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의 땅을 부쳐먹고 살아가는 농민들은 농사를 망치게 된다.

마을의 농토에 물을 대주던 물길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을 수도로 이용하게 되면서 더욱 물 걱정이 심하여진다. 수도 출장소에서는 농민들의 폭동이 두려워 뒤늦게 물을 터놓지만 물은 턱없이 모자라 물싸움이 벌어지고 마을 인심만 흉하여진다. 농민들의 기우제백중날 보광사의 기우 불공도 영험 없이 가뭄은 계속된다. 여름이 가고 추석이 돌아왔으나 마을은 흉년으로 명절을 기쁘게 맞을 수가 없다.

보광사에서는 농사를 망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전과 다름없는 소작료를 요구한다. 성동리의 구장과 고 서방 · 들깨 · 또쭐이 등 대표의 저리자금 지불기한의 연기신청도 거절당한다. 며칠 뒤 마을 논에는 입도(立稻)차압(差押)의 팻말이 나붙고 고 서방은 드디어 야간도주를 하고 만다.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게 된 극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자 또쭐이 · 들깨 · 철한이 · 봉구 등 성동리 장정들은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해보려고 묵묵히 마을을 떠난다.

이 작품에는 가뭄이라는 자연적 재해를 통하여 구체화되는 식민지 농촌의 사회적 모순이 그려져 있다. 일본인 및 식민지 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이 사는 도시에 수도를 공급하기 위하여 더욱 심각한 가뭄을 겪어야 하였고, 보광사의 중으로 대표되는 지주와 그 배후에 있는 식민지 권력과 이에 기생하는 인간들의 반대쪽에 가난한 소작 농민들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모순을 농민의 편에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농촌의 내부적 부조리와 농민의 고통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뿐만 아니라 패배와 좌절의 절망적 상황에서도 또다시 흙을 딛고 일어서려는 강인한 농민들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인간 긍정의 문학에 이를 수 있었다. 또, 특정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고 ‘성동리’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어서 상황의 구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단편의 경우 시점의 자유로운 이동이 서술 방향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인데도,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식민지시대 농민들의 삶의 양상과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수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참고문헌

『김정한단편집선(金廷漢短篇選)』(김정한, 삼중당, 1975)
『한국현대소설사』(이재선, 홍성사, 1979)
「김정한(金廷漢)의 사하촌(寺下村)-식민지시대의 농민현실-」(염무웅, 한국현대소설작품론, 문장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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