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교주도병마사·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창성군에 봉해진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352년(공민왕 1) 대호군(大護軍)이었을 때 정방(政房)에서 사사로이 벼슬 40여 건을 수여하였다는 죄명으로 하옥되었다가 얼마 뒤 복직되었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紅巾賊)의 2차 침입 때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서 왕을 호종(扈從)하였다. 이듬해에는 공민왕이 흥왕사(興旺寺)에 머물 때 일어났던 김용(金鏞)의 난 때 국왕을 모시고 피난하였다. 이 두 공로를 인정받아 모두 1등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1364년(공민왕 13) 교주도병마사(交州道兵馬使)가 되었을 때 여진(女眞)의 삼선(三善) · 삼개(三介) 등이 홀면(忽面 : 현, 함경남도 홍원군)과 삼살(三撒 : 현, 함경남도 북청군)에 침입하였으므로, 정예병 500인을 거느리고 가서 막았다. 그 뒤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임명되고, 창성군(昌城君)에 봉해졌다.
글씨에 뛰어나 개성의 남대문종명(南大門鐘銘)과 연복사종명(演福寺鐘銘)을 썼다. 또한 1377년(우왕 3)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의 서문을 지었다. 이색(李穡)은 그의 문장을 두고 “필력은 굳세고 곧아서 빛이 쏘는 듯하다.”라고 평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성씨문헌지(成氏文獻誌)』
- 『목은시고(牧隱詩藁)』 「곡역암성장원(哭易菴成壯元)」
- 『목은문고(牧隱文藁)』 「송당선생김공묘지명(松堂先生金公墓誌銘)」
주석
-
주1
: 생년 : 『목은시고(牧隱詩藁)』 권 23, 詩에서 이색은 창녕군과의 나이 차이가 10살이라고 쓰고 있다. 이 창녕군이 성사달이라면 성사달의 생년은 1318년이 된다. 고려 말에 창녕 성씨로서 군에 봉해진 인물은 성여완(1309~1397)·성석린(1338~1423)이 있으나, 이들은 생년이 다르므로, 남은 성사달이 이색이 말하는 창녕군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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