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신위(申緯)가 지은 악부시.
개설
이 작품은 일시에 제작된 것이 아니고, 작자가 강화유수 재임기간인 1828년(순조 28) 9월에서 1830년 7월까지 6수를 지었고, 그 뒤 자하산장에 은거하고 있던 1831년 6월까지 34수를 지어, 이것을 모두 정리하여 40수를 완성하고 자서를 쓴 것으로 판단된다.
내용
수록작품 가운데에 작자를 알 수 있는 것은 24수이다. 명옥(明玉) · 매화(梅花) · 이개(李塏) · 이조년(李兆年) · 이유(李柔) · 이명한(李明漢) · 윤선도(尹善道) · 유자신(柳自新) · 송인(宋寅) · 기대승(奇大升) · 장만(張晩) · 이정(李鼎) · 한호(韓濩) · 황진이(黃眞伊) · 서익(徐益) · 박인로(朴仁老) · 조경렴(趙慶濂) · 이정신(李廷藎) · 정온(鄭蘊) · 김상용(金尙容)의 순으로 20인의 작품을 실었다. 황진이의 작품이 3수, 이명한과 윤선도의 작품이 각각 2수씩 수록되었다. 그리고 작자 미상이 16수인데, 이 중에서 출전조차 확인되지 않는 것이 2수이다.
이 작품은 이유원(李裕元)의 「가오소악부(嘉梧小樂府)」를 짓게 한 동기가 되었으며, 후대의 사대부들에게 많이 애송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현이 처음 ‘소악부’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그 이후 신위의 이 작품에서 다시 이 이름이 쓰이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신자하소악부연구(申紫霞小樂府硏究)」(손팔주, 『부산여자대학교논문집』6, 1978)
- 「자하한시연구서설(紫霞漢詩硏究序說)」(정원표, 서울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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