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리는 보성강의 곡류로 인해 조성된 반월형의 충적대지인데 이곳에서 고인돌 12기 및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다. 인접한 고대마을에서는 3기의 고인돌이 확인된 바 있다.
고인돌들은 금평마을의 동쪽을 지나 보성강을 향해 길게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되는 낮고 편평한 대지상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약 300㎡의 범위 내에서 고인돌의 상석으로 여겨지는 돌 12기가 노출되어 있었다. 조사 결과, 그 중 7기에서만 하부구조가 확인되었고 나머지 5기는 위치가 이동된 것 또는 하부구조가 모두 파괴된 것임이 밝혀졌다.
하부구조가 확인된 고인돌 중 지석(支石)이 확인된 것이 3기이다. 2기는 석실의 개석 위에 바로 상석을 올린 무지석형(개석식)이고 나머지 2기는 파괴 정도가 심해 지석유무의 확인이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돌방은 모두 6기에서 확인되었다. 이 곳 고인돌의 구조상의 특징은 돌방 바닥면 양끝과 중간부, 또는 돌방의 바닥면을 3분하는 2곳에 납작한 강돌이나 할석을 1∼3매씩을 깔아 마치 관대같은 시설을 마련한 점을 들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간돌검 2점, 돌화살촉 1점, 삼각형돌칼 1점 등과 민무늬토기편, 그리고 가락바퀴 등이 있다. 출토유물 중 유적의 연대를 제시할만한 단정적인 것은 없으나 전반적인 상황에서 볼 때 서기전 4, 3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고인돌 조사과정 중 고인돌 하부구조 및 유구 주변에서 3점의 깬석기가 수습되어 전라남도 지방 최초의 구석기 유적이라는 중요성에서 추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 결과, 석영제 및 이암제의 200여 점 이상의 석기류가 확인되어 이 유적이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임이 판명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출토된 유물들에서 보이는 세석인(細石刃) 기법을 통해볼 때, 상한은 서기전 1만 5000년에서 1만 3000년쯤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금강 이남의 한반도 서부지역에서 최초로 정식 발굴조사된 구석기 유적이며, 또 전라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