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2대 효소왕의 능. 왕릉.
개설
효소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이홍(理洪, 또는 理供)으로, 제31대 신문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신목왕후(神穆王后)이다. 692년에 즉위하여 702년에 승하할 때까지 10년간 재위하면서 모든 제도를 정비하고 당나라 · 일본 등과 수교하였다. 왕이 승하한 뒤 망덕사(望德寺) 동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내용
현재의 왕릉은 1929년 4월, 1969년 11월에 도굴을 당했다. 특히 두 번째 도굴로 돌방의 규모가 드러났는데, 길이 3m 너비 150㎝ 높이 150㎝의 크기였다. 돌방에 사용된 돌은 화강암이었으며, 돌방 안에 부장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현재의 망덕사터에서 동으로 200m 미만의 가까운 거리에 인접해 있는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신문왕릉이 효소왕릉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신문왕릉은 경주 남산에 있는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皇福寺址三層石塔)에서 동편으로 약 250m 거리에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는 능의 위치로나 둘레돌의 축조상태로 보아서 부합된다는 것이다. 특히 둘레돌은 자연석을 다듬은 소형 석재로 바뀌고 갑석(甲石)과 지대석이 처음으로 갖추어지고 기단식으로의 이행단계에 있으며 삼각형에 가까운 구형(矩形)의 버팀석이 처음으로 출현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분연구』(강인구, 학연문화사, 2000)
-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 1975)
- 「경주지역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경상북도·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986)
- 「신라 십이지신상의 분석과 해석」(강우방,『불교미술』1,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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