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582년(진평왕 4)에 아도(阿度)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연대의 신빙성은 없다. 그 뒤 문무왕 때에 원효(元曉)가 중창하였고 조선 초기에는 무학(無學)이 중창하였으며, 명종 때 사명당(四溟堂)이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인해 퇴락되었다가 근래에 국사당 · 산신각을 지었고, 1960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제천 신륵사 극락전과 국사당(國祀堂) · 요사채 등이 있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4점의 탱화가 있는데, 높이 140㎝의 목조아미타불좌상은 조선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 110㎝의 대세지보살좌상은 인자하면서도 힘있는 모습을 갖춘 조선시대 작품이다.
국사당은 원래 제천시 하수면 송계리의 월악산 수경대(水鏡臺)에 있었다. 신라 때부터 월악신사(月岳神祀)를 설치하여 제천(祭天)하던 곳이며, 1256년(고종 43) 몽고병이 침입했을 때나 임진왜란 때 부근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난을 피하였다고 한다. 이 월악산신사는 국가적 기도처에서 뒤에 마을의 수호신격으로 성격이 달라졌는데, 일제강점기에 폐허화되었다.
그 뒤 주위 마을은 흉년이 들고 대홍수가 났으나 그 이유를 아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신륵사에 있던 승려가 그 까닭이 월악신사의 폐허에 있음을 느끼고 신륵사 경내에 국사당을 지어 월악산에 상주하는 신령님을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중앙의 신령, 좌우에 동남동녀가 시립하고 있는 탱화 한 폭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197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 1기와 높이 110㎝의 당간지주가 극락전 앞에 있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을 1981년 3월에 해체, 복원하던 중 석탑의 기단부에서 108개의 소형토탑(小形土塔)과 사리함편(舍利函片) 2개가 출토되었다. 소형토탑은 높이 3.5∼5㎝의 방형다층탑(方形多層塔)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흙을 빚고 선을 그어서 탑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유물들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