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 한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한 학자. 역사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해방 직후, 조선사편수회가 보관하고 있던 「일본공사관기록」의 원판을 소각하려 하자, 김건태와 함께 중추원 서고로 옮겨 보관했다. 이후 1945년 8월 진단학회 상임위원, 10월 조선역사협회 부회장, 12월 조선사연구회 부회장이 되었다. 1946년 1월에는 임시중등국사교원양성소를 설립하고 강사로 활동했고, 3월에는 국사관을 설립, 9월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1946년 3월 고려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고, 1947년 1월 국민학교 및 중고등학교 사회과 교수요목제정위원, 2월에는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이 되었다. 1949년 문교부 편수국장이 되었다. 1951년부터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겸임했으며, 1954년 제1회 학술원 회원에 선출되었고,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62년에는 독립유공자상훈심의위원회 위원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1964년에는 종신회원이 되었다. 1961년에는 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1965년에는 민족문화추진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67년 12월 한국사연구회를 조직, 회장으로 취임했다. 1981년 2월 13일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 『치암신석호박사고희기념논총』(형설출판사, 1973)
- 『미군정청관보(美軍政廳官報)』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 「치암신석호박사약력」(『대구사학』7·8, 1973)
- 「신석호박사화갑기념조선시대연구특집」(『사학연구』 18, 1964)
- 『자유신문』(1945.12.28)
- 『동아일보』(19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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