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지역의 혁신의회 계통으로 김좌진(金佐鎭)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는, 김좌진이 암살된 뒤 홍진(洪震) · 지청천(池靑天) 등이 중심이 되어 1930년에 한국독립당으로 개편되었다.
한국독립당은 1933년 11월 무렵에 만주에서 중국관내로 이동해 당세 확장에 노력하였다. 이때 한국독립당은 난징[南京]에 본부를 두고 있던 한국혁명당과 합당을 모색하게 되었다. 한국혁명당은 1932년 1월에 윤기섭(尹琦燮) · 정태식(鄭泰熙) · 신익희(申翼熙) · 김홍일(金弘壹)을 중심으로 난징에서 조직되어, 사상 정화와 독립운동 진영의 단결을 꾀하였던 정당(政黨)이다.
그 결과, 1934년 2월 25일 한국독립당 대표 홍진 · 김원식(金元植)과 한국혁명당 대표 윤기섭 · 연병호(延秉昊)가 난징에서 모임을 가지고 합당 방안을 합의하였다.
그 해 3월 1일에서 8일까지 열린 대표자 회의에서 중앙위원장에 홍진, 총무위원장에 윤기섭, 조직위원장에 김원식, 선전위원장에 연병호(延秉昊), 군사위원장에 이청천(李靑天), 민중위원장에 조경한(趙擎韓), 조사위원장에 성주식(成周寔), 교섭위원장에 신익희 등을 선임하고 행동방침을 결정하였다.
신한독립당이 표방한 당의(黨義)와 강령을 보면, 우선 당의에서는 “본당은 민족주의를 기초로 하는 정권 · 생계 · 문화의 독립과 민주적 신건설을 완성하고 전세계 인류의 평등과 행복을 촉진한다.”라고 하였다.
강령에서는 “중앙집권제의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것, 토지와 대생산기관은 국유로 하고 국가경영의 대작업을 실시할 것, 국민의 생산 · 소비 등 일체의 경제활동은 국가가 통제하고 재산사유권을 한정하고 생활의 평균을 확보할 것, 민족의 고유문화를 발양하고 국민의 기본교육과 전문인재양성을 국가가 부담할 것, 국민의 자유권을 보장하고 병역 · 조세 · 수학(受學) · 취공(就工) 등의 절대의무를 여행(勵行)할 것, 국방자위상 채용하는 징병제와 국민무장제를 병행할 것” 등을 내걸었다. 1935년 7월 5일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함으로써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