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적사(深寂寺)는 조선 후기인 1670년(현종 11)에 산청 웅석산(熊石山) 지곡사(智谷寺)의 산내 암자로 창건되었다. 운일(雲日)이 처음 법당을 세워 수행처로 삼았다.
1687년(숙종 13)에 누헌(樓軒)과 익사(翼舍)를 지었다. 1749년(영조 25)에 한암(寒巖) 성안(性眼)이 발원하고 주지 심천(審天)이 공사를 감독하여 이듬해에 완공하였는데, 터를 넓혀서 건물을 2배로 확장하였다. 중수한 지 5년이 지나 화재로 법전이 소실되자, 7년 후에 다시 중수하였다. 이때 능연(能演)이 그렸던 탱화를 불전 크기에 맞게 고쳐서 더 크게 그렸다. 심적암(深寂庵)으로 불리다가, 근대에 와서 지곡사가 폐사된 이후 심적사가 되었다. 1912년 8월에 출간된 『조선불교월보』 제7호에 ‘심적사’라고 표기되어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로 관리, 운영되고 있다.
조선 후기 승려 추파(秋波) 홍유(泓宥: 1718~1774)는 지방 수령을 지낸 양반의 손자로 태어나 유학을 배웠으나 19세에 출가하였다. 출가 후 처음에는 용담(龍潭) 조관(慥冠)의 제자로 있다가, 후에 한암(寒巖) 성안(性岸)을 스승으로 모셨다. 이후 지곡사 등에서 30년간 강의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홍유의 문집 『추파집(秋波集)』 목판이 심적암에 보관되어 있다가 소실되었는데, 1917년에 인쇄한 후쇄본이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심적사 경내에 한암당 성안의 승탑과 탑비, 추파당 홍유의 승탑과 탑비가 전한다. 두 승탑은 조선 후기에 일반적으로 조성되었던 석종형 양식으로 되어 있다. 한암당 승탑 옆에 세워진 탑비에 “숭정기원후삼을사단양월립(崇禎紀元後三乙巳端陽月立)”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어 1785년 5월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추파당 승탑에는 ‘구연탑(九淵塔)’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그 옆에 서 있는 탑비에는 “숭정기원후삼병신삼월일(崇禎紀元後三丙申三月日)”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어 1776년 3월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산청 심적사 한암대사 승탑 및 탑비는 2003년 6월 12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산청군 읍내 지리에 ‘심적정사(深寂精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 심적사에 있었던 석조불상군이 있다. 한국전쟁 때 심적사가 불타면서 석조불상군을 삼봉산의 동룡굴에 잠시 두었다가, 이후 지금의 자리로 불상군을 옮겨 왔다. 석조불상군은 석가모니불 1구, 나한상 15구, 보살상 1구, 신장 2구, 문인석 2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22기의 불상이 있었는데, 1기는 한국전쟁 때 분실되었다. 산청 심적정사 석조불상군(山淸 深寂精寺 石造佛像群)은 1996년 3월 21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편찬한 『조선사찰사료』 경상남도 편에 「방장산심적암중수기(方丈山深寂庵重修記)」 2편이 전하는데, 하나는 1751년(영조 27)에 문장가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지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1761년(영조 37) 적성에 사는 이름 모를 유학자가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