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후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시어사(侍御史)를 거쳐 양광도 안렴사(楊廣道按廉使)로 있을 때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 내려온 공민왕(恭愍王)을 충주(忠州)에서 맞았다. 왕이 다시 음죽(陰竹: 지금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 설성면 · 율면 일대에 있었던 고을)으로 옮겼는데 관리와 백성이 다 도망을 가서 왕을 접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문책을 당해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로 좌천되었으나 뒤에 전법 총랑(典法摠郎)으로 다시 승진되었다.
그 무렵 신돈(辛旽)에게 아부하는 사대부가 많았는데, 안종원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참소(讒訴)를 당하였고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좌천되었다. 안종원은 좌천된 곳에서 선정을 펼쳤는데 백성들이 생사당(生祠堂: 살아 있는 이를 제사 지내던 사당)을 세워 제사 지내기도 했다.
7∼8년을 한가로이 지내다가 1371년(공민왕 20) 신돈이 그 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후, 사헌시사(司憲侍史)를 거쳐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에 이르렀다. 우왕(禑王) 초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유순(柳珣) 외에 다섯 사람과 함께 도당(都堂)에 글을 올려 환관(宦官)의 폐단을 논했으나 재상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 우상시(右常侍)를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승진되었다가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가 된 뒤, 흥녕군(興寧君)에 책봉되었다. 이 무렵 안종원은 공민왕 때부터 환관으로 있던 김현(金玄)이 내사(內事)를 잘 정돈하지 못한다고 논박해, 김현이 회덕현에 유배되었다. 아울러 환관의 수를 10명 내로 줄여서 국정의 문란을 막아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또 명나라에 가는 사신들이 사행(使行)할 때 기화(奇貨)로 금 · 은 · 말 또는 포목(布木) 등을 밀반출해 장사하는 것을 엄금하도록 건의하였다.
1382년(우왕 8) 5월, 지공거로 동지공거 윤진(尹珍)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여 류량(柳亮) · 장자숭(張子崇) · 한상경(韓尙敬) · 이회(李薈 · 李檜) · 조박(趙璞) 등을 선발하였다. 순흥군(順興君)으로 새로 책봉되고 다시 공신호(功臣號)를 받았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최영(崔瑩)이 탐관과 권신들을 숙청할 즈음에 청렴한 안종원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기용, 관리의 인사권을 맡겼으나 곧 사임하였다. 그 뒤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이 되었고, 조선조에 와서는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나 곧 사망하였다.
안종원은 이색(李穡)과 함께 국자시(國子試)에 합격하였고, 이후에도 이색과 교유하였음을 이색의 시 「유항루상여염동정음(柳巷樓上與廉東亭飮)」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권주(權鑄)가 써서 1383년(우왕 9)에 세운 여주 신륵사대장각기비(神勒寺大藏閣記碑)의 음기(陰記)에 당시의 고위 관료들과 함께 안종원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양촌집(陽村集)』
- 『동문선(東文選)』
- 『목은시고(牧隱詩藁)』
- 「신륵사대장각기비((神勒寺大藏閣記碑)」 음기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연구』(일지사, 1990)
- 안용선,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출판부,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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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려 시대에, 첨의부에 속한 정이품 벼슬. 충렬왕 1년(1275)에 문하시랑평장사를 고친 것인데, 뒤에 중호(中護)로 고쳤다가 다시 찬성사로 고쳤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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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시대에, 춘추관과 예문관에 둔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춘추관의 전신인 사관(史館)과 예문관의 전신인 한림원에서 따온 말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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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같은 직급 안에서 다른 관직으로 보(補)하여 임명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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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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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사신 행차’를 줄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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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진기한 재물이나 보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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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베와 무명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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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고려 시대에, 국자감에서 진사를 뽑던 시험. 시험 과목은 부(賦)와 시(詩)이며, 최종 고시인 예부시(禮部試)를 보조하는 예비 고시로 조선 시대의 소과(小科)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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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고려 말기의 승려(?~1371). 자는 요공(耀空). 호는 청한 거사(淸閑居士). 공민왕에게 등용되어 국정을 장악하고, 전제 개혁(田制改革), 노비 해방 따위의 개혁 정책을 폈으나, 상층 계급의 반발로 실패하였으며, 후에 왕의 시해를 음모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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