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동쪽 2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양주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양주향교의 조선 전기 변천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에 재건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확인되는 기록은 1850년의 중건이다. 홍직필(洪直弼)의 「양주목학중수기(楊州牧學重修記)」에 따르면, 김신근(金愼根)이 양주목사로 부임한 후 여름부터 공사를 시작해 겨울에 끝마쳤는데, 대성전과 동무 · 서무를 새롭게 짓고, 재실(齋室)의 옛터에도 건물을 세우고 단청을 칠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58년에 복원했다.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오늘날 양주향교에서는 인성예절 다도 체험교육 및 기로연 등의 행사를 통해 지역 문화 결집의 구심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주향교는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