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12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경상남도언양군읍지(慶尙南道彦陽郡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언양군읍지(彦陽郡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 1장을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창고(倉庫), 관방(關防),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궁실(宮室), 누정(樓亭), 도로,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凜), 관적(官蹟), 과거(科擧), 인물, 제영(題詠), 비판(碑板) 등으로 구성하였다.
건치연혁 항목에서는, 경상남도 언양군(彦陽郡)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 상북면(上北面) · 삼남읍 · 삼동면]이 신라 때 거지화현(居知火縣)이었다가 경덕왕(景德王) 때 헌양(巘陽)으로 이름을 바꾸어 양주(良州)의 속현이 되었고, 고려 인종(仁宗) 때에 감무(監務)가 설치된 후 언양으로 개칭한 이래 조선조에서도 이를 그대로 따랐음을 밝혔다. 성씨 항목에는 군내 거주 성씨들을 기록하였고, 산천 항목에는 주변의 산과 하천에 대해 말하였다. 풍속 항목에서는 검소하고 아끼는 풍속과 마두전(馬頭戰) 관련 내용을 소개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상북면 · 중북면(中北面) · 하북면(下北面) · 상남면(上南面) · 중남면(中南面) · 하남면(下南面) 등 6개 면을 기재하였다. 호구 항목에는 1846년(헌종 12) 기준으로 원호(元戶)가 1,224호이고, 인구수는 남자가 4,312명, 여자가 4,995명이라고 기록하였다. 전부 항목에는 한전(旱田)과 수전(水田)에 대한 정보 및 전세(田稅), 대동(大同), 요역(徭役) 등 당시의 조세 규모를 적어 놓았다.
군액 항목에는 언양군 내 각 군병의 소속별 인원수를 기록하였고, 성지 항목에서는 읍성(邑城)과 단조성(丹鳥城)을 언급하였다. 창고 항목에는 군자창(軍資倉) 등 창고 목록을 기재하였으며, 궁실 항목에는 객관(客館)과 평근당(平近堂), 향사당(鄕射堂) 등 당시 관청 건물에 대해 써넣었다. 제언 항목에는 총 18개의 저수지 정보를 기록하였고, 장시 항목에서는 읍내장(邑內場)과 유목정장(柳木亭場) 등을 소개하였다.
역원 항목에는 6개의 역원을 적어 놓았고, 형승 항목에서는 반구대를 언급하였다. 고적 항목에서는 화장굴(花藏窟)과 천전석불(川前石佛)에 관련한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토산 항목에서는 철과 표고버섯, 송이버섯 등을 소개하였고, 진공 항목에서는 인삼과 천문동, 작목(作木) 등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였다.
관적 항목에는 세종조에 현감으로 부임한 서거광(徐居廣)부터 1896년(고종 33)에 부임한 군수 이근영(李根榮)까지 언양 지역의 수령 명단을 기재하였다. 과거 항목에는 태종조에 급제한 김자(金赭)를 기록하였으며, 인물 항목에는 언양 출신의 명사와 효자 및 열녀 등에 대한 정보를 썼다. 제영 항목에는 홍여방(洪汝方)과 이지명(李知命), 권맹손(權孟孫), 서거정(徐居正), 정몽주(鄭夢周)의 시를 수록하였고, 비판 항목에는 증병조판서정무공(贈兵曹判書貞武公) 최진립(崔震立)의 묘갈명 등 지역 인물들의 묘비(墓碑) 정보를 기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