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향교는 1897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이후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여수군이 신설됨에 따라 건립되었다. 여수향교는 조선시대에 행해진 1읍 1교 원칙에 따라 세워진 것이며, 이는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여수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향교가 들어선 지형에 따라 더 중요한 건물을 돋보이는 자리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향교에서 제일 중요한 공간은 대성전이다. 따라서 향교를 평지에 지을 경우 대성전을 전면에 배치하기에 전묘후학(前廟後學)의 형태를 띠게 되며, 비탈진 곳에 지을 경우 가장 높은 곳에 대성전을 배치해 전학후묘 형태를 띠게 된다. 여수향교는 비탈진 곳에 있기에 전학후묘 형태로 짓게 된 것이다.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여수향교는 대한제국기에 지어졌지만, 조선의 것을 상당수 계승했다. 여수향교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985년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