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는 범어 아나률타(Anuruddha, 阿那律陀)의 번역으로 승려가 독경(讀經) · 설법(說法) · 법요(法要) · 논의(論議)할 때 강사(講師)가 지니는 도구이다. 또, 강론하는 스님이 혼자서 글을 기록하여 두고 참고하는 데 쓰는 것이라고도 하며, 혹은 등의 가려운 데를 긁는 기구로 쓰였다고 한다. 여의란 모든 것이 뜻과 같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불교 전래 때 인도로부터 유입된 것이라 한다.
여의의 형태는 도교(道敎)가 흥할 당시 영지(靈芝) · 서운(瑞雲) 등 상징적인 사물에서 그 형태를 본뜬 것인데 길상(吉祥)과 축송(祝頌)에 쓰이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불교와 관련된 모든 조형미술에서 그 형상이 장식되었으며 건축양식을 비롯하여 가구(家具) · 잡기(雜器) 등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여의의 문양은 ‘평안여의(平安如意)’ · ‘사사여의(事事如意)’ · ‘백사여의(百事如意)’ · ‘만사여의(萬事如意)’ · ‘길상여의(吉祥如意)’ · ‘화합여의(和合如意)’ 등의 문구로 해석되어 그에 해당하는 여러 상징적인 그림을 그려서 붙이고 축송하였다.
여의두문의 머리형식은 보상화문(寶相華文)에서 본뜬 것이며 그 형식은 구름무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즉 서방에서 기원하는 팔메트(palmette)문양이 간다라 미술에서 새로운 모양을 이루고, 다시 간다라식 팔메트문양이 한대(漢代)의 고식(古式) 인동문형식(忍冬文形式)과 혼합된 불교미술 양식으로 나타난다.
팔메트장식문양은 신라 고분인 금관총(金冠塚) 출토 금동초두(金銅鐎斗)의 손잡이를 비롯하여 각종 관식(冠飾) 등 장신구와 그 밖의 장식물에 나타나며, 그 형태가 통일신라시대를 즈음하여 연화문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 팔메트의 요소는 화려한 보상화문 양식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과 영지의 모양을 혼합한 도안무늬가 여의두문이다. 여의두문은 고려시대 말엽 공예의장의 특징을 이루는 연판문대(蓮瓣文帶)를 대신하여 조선도자(朝鮮陶磁)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