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영해사록, 감찰규정, 성균좨주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08년(충선왕 즉위년)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었고,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통간하자 백의(白衣)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진 채 대궐로 들어가 극간을 하였다. 곧 향리로 물러나 학문에 정진했으나 충의를 가상히 여긴 충숙왕의 여러 번에 걸친 소명으로 다시 벼슬길에 나서서 성균좨주(成均祭酒)로 치사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예안(禮安)에 은거하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당시 원나라를 통해 새로운 유학인 정주학(程朱學)이 수용되고 있었는데, 이를 깊이 연구해 후학들에게 전해주었다. 정이(程頤)가 『주역』을 주석한 『정전(程傳)』은 처음 들어왔을 때 아는 이가 없었는데, 방문을 닫아걸고 연구하기를 달포 만에 터득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경사(經史)에 통달했고, 『고려사』 열전에 ‘역학(易學)에 더욱 조예가 깊어 복서(卜筮)가 맞지 않음이 없다.’고 기록될 만큼 아주 뛰어난 역학자였다. 또한 시조 2수와 몇 편의 시가 전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화해사전(華海師全)』
- 『동국유사(東國遺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양촌집(陽村集)』
- 『후천집(朽淺集)』
- 「역동 우탁선생 사상의 연구」(오석원, 『안동문화』5, 1984)
- 「역동 우탁선생의 학문과 인품」(이완재, 『안동문화』3, 197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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