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창근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0년에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 최초로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귀국한 후 조선총독부를 거쳐 충청남도와 경상북도에서 재직하였다. 재직 시절 신문에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조선총독부의 시정방침을 선전하는 글을 기고하였다. 친일단체에도 적극 참여하여 동민회, 청구학회, 동우구락부, 경기도 유도연합회, 존서유도연합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일본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훈장을 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북도 및 경기도 산업부장 겸 참여관 · 사무관 재직 시절 군용물자 공출 및 조달, 물자 조정 및 물가 상승 억제 등에 주력했으며,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조선총독부의 시정방침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경상북도농회장(1936년 6월 ~ 1939년 5월), 경상북도지방미곡통제조합연합회장(1936년 11월 ~ 1939년 5월), 경상북도 방공위원회 위원(1938년 3월), 경기도지방미곡통제조합연합회장(1939년 5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1939년 5월), 경기도농회장(1939년 5월 ~ 1942년 1월), 경기도 유도연합회 부회장(1939년 11월) 등을 겸임했다. 1942년 10월 충청북도지사로 임명됐으며, 1944년 8월부터 1945년 6월까지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했다. 국민총력충청북도연맹 회장(1942년 10월), 충청북도 농회장(1943년 10월),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회장(1944년 8월), 경상북도 소득심사위원회 회장(1945년 4월) 등을 겸임했다.
친일단체에도 적극 참여했는데, 1927년 7월 친일단체 동민회 회원, 청구학회 평의원, 동우구락부 총무간사, 경기도 유도연합회 부회장, 조선유도연합회 이사 등을 맡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1928년 11월 쇼와(昭和) 대례기념장, 1937년 9월 훈6등 서보장, 1941년 9월 훈5등 서보장, 1942년 5월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해방 후 1946년 화신무역회사 상무 겸 이사, 경찰후원회 부회장, 상호무역회사 전무이사로 활동했으며, 1949년 8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송치되었다.
이창근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4: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443∼466)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4: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 『경성일보』(1938.2.18)
- 『매일신보』(1938.1.3; 2.25)
- 『조선총독부관보』(1927.3.2; 1928.4.13; 1929.1.21; 1936.5.15; 1936.6.5.; 1939.5.17)
- 『동아일보』(1927.2.27; 1929.1.24; 1934.5.2; 1936.5.22; 1939.5.19)
- 『대한민국인사록』
- 『조선인사흥신록』
- 『조선총독부급속부서직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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