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애왕릉 ( )

경주 전 신라 민애왕릉
경주 전 신라 민애왕릉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4대 민애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이칭
이칭
민애왕릉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전 민애왕릉(慶州 傳 閔哀王陵)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70년 02월 06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산4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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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4대 민애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능.
내용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1,283㎡. 무덤의 지름 12.5m, 높이 3.8m, 면적 1,130㎡. 무덤은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외양을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圓形封土墳]이다.

이 능은 광복 전에 두 차례 도굴당했고 1981년에도 도굴당할 뻔했으나 주민들이 사전에 알아 미수에 그친 적이 있다. 이러한 일 때문에 능의 정비가 필요하게 되어 1984년 9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봉분의 주변을 발굴 조사해 완전한 규모를 밝히게 되었고, 아울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무덤의 밑 둘레를 따라 너비 30㎝, 길이 10∼100㎝의 잘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3단으로 쌓아올린 다음, 그 위에 길이 80㎝, 높이 15㎝ 내외의 장방형 갑석(甲石)을 올려 보호석렬(保護石列)을 마련하였다.

여기에 너비 35㎝, 길이 100∼130㎝의 단면 5각형의 받침석[支柱石] 20여 개가 무덤 둘레를 따라 190∼290㎝ 간격으로 받쳐져 있었다. 또한 봉분 밑 둘레 외곽으로 12개의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깊이 18㎝, 지름 25㎝ 크기의 구멍에는 곱돌[蠟石]로 만든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넣은 것이 확인되었는데, 쥐 · 돼지 · 소 · 닭 4개만 발견되었다. 다른 십이지상은 무덤의 외부 받침석이 마련될 때 파손되어 없어진 것 같다. 이 십이지상은 높이 10㎝ 내외의 작은 것으로 무덤의 바깥쪽을 보게 서있었다.

또한 주변에서 뼈단지[骨壺]가 발견되었다. 뚜껑에는 ‘元和十年(원화십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원화는 중국 당나라 때의 연호로 원화 십년은 815년에 해당된다.

의의와 평가

이 능은 70여 개의 받침석이 후대에 와서 보완되었고, 또 주변에서 815년에 만들어진 뼈단지가 발견됨으로써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능은 815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839년에 죽은 민애왕과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라 이 능을 신라 제40대 애장왕의 능으로 보는 설도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왕릉연구』(이근직, 학연문화사, 2012)
『전민애왕릉주변정리보고』(정량모 외, 국립경주박물관,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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