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릉은 연경사(衍慶寺)라는 능사(陵寺)가 있었으며, 왕실에서는 노비와 토지를 내려보내 여러 차례 개축해 관리하였다. 특히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사재(私財)로 법회를 베풀어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도 하고, 해풍군 흥교사(興敎寺)의 탑을 연경사로 옮기기도 하였다.
제릉은 상중하계(上中下階)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병풍석(屛風石)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이 있고, 그 주변에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의 정면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望柱石)이 있다.
중계 중앙에는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좌우에 문석인(文石人)과 석마(石馬), 하계에는 무석인(武石人)과 석마가 있다.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刻)이 있다. 『 춘관통고(春官通考)』 에 따르면 제릉에는 홍살문, 전사청(典祀廳), 제기고(祭器庫), 안향청(安香廳), 재실(齋室), 연못 등의 부속 시설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없어졌다.
제릉은 사실상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왕릉으로 태조(太祖, 13351408, 재위 13921398) 건원릉(健元陵)보다 먼저 완성되어 조선왕릉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제릉 돌거리 중 병풍석의 돌사람이 기린 모습의 머리 형태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제릉의 8각 장명등은 조선왕릉에서 가장 먼저 확인되는 8각 장명등으로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양식상 공통점이 있어 같은 장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