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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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1917년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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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7년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개설

1914년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출신인 장일환(張日煥)이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박용만(朴容萬)을 만나 상의한 뒤 조선국민회 설립이 계획되었다. 그 뒤 장일환이 귀국하여 동지 포섭공작을 전개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연원 및 변천

장일환은 숭실학교 재학생인 배민수(裵敏洙) · 김병두(金炳斗) · 김석헌(金錫憲) · 이병균(李炳均)과 졸업생 노선경(盧善敬), 그리고 숭실대학의 이보식(李輔植) · 최달형(崔達亨), 졸업생인 박인관(朴仁寬) · 설명화(薛命和) · 이수현(李守鉉) 등을 포섭하였다.

또, 숭실대학 교사 안세식(安世植), 군산영명중학교 학생 조옥초(趙玉肖), 서당교사 노덕순(盧德淳), 교회장로 김인준(金仁俊), 연희전문학교 학생 김지수(金智洙) 등을 설득하여 회원 25명으로 조직하였다.

회장에 장일환, 서기 겸 통신부장에 배민수, 외국통신원에 백세빈(白世彬)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자치의 자유를 향유하고자 다음 각 항을 실행할 것을 결정하였다.

① 재미국민회(在美國民會) 기타 해외동포와 연락을 도모하여 우리의 이상을 실현할 것 ② 회(會)의 세력을 점차 중국 간도방면으로 넓힐 것 ③ 회칙 · 회원명부 등은 비밀누설의 염려가 있으므로 일체 만들지 말 것 ④ 회원은 매월 20전의 회비를 낼 것

⑤ 오병섭(吳炳燮)은 경상도, 노선경은 황해도, 강석봉(姜錫奉)은 전라도의 구역장(區域長)으로 각각 임명하여 회원을 모집하게 할 것 ⑥ 매년 봄 평양신학교 및 숭실학교 개학기간에 정기회를 열 것 ⑦ 국내외의 연락기관으로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백세빈을 배치하고 또 북경(北京)에 1명의 통신원을 배치할 것 ⑧ 회원 상호간에 암호를 사용할 것 등이었다.

1917년 6월 회원들은 각기 집게손가락을 절단하여 대한독립결사라는 혈서를 써서 결의를 굳게 하였다. 그리고 노선경은 간도 방면의 동지들과 연락하기 위해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로, 배민수는 중국 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회원들은 군자금 1만원을 모아 권총을 구입하고, 또 미국 망명 등을 계획하다가 1918년 발각되어 붙잡혔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 2(국사편찬위원회, 1966)
「1910년대 국내에서의 민족운동」(신재홍, 『한국사』 21, 국사편찬위원회, 1978)
집필자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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