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사회경제연구』는 한영우가 조선왕조의 개창을 전후한 정치 변동을 사회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저술한 학술서 있다. 1983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조선 초기 정치사를 개관하고 조선왕조 개국공신의 출신 배경에 대한 분석, 조선 초기 사전(私田) 정책 등을 고찰하였다. 또한 조선 전기에는 특정한 소수 지배 신분층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다. 2부에서는 조선 초기의 사회 계층과 사회 이동에 대한 시론적 구상을 제시해 그동안 학계에서 통용되어 오던 양반의 개념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였다.
1983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우선 조선 초기 정치사의 흐름을 개관하면서 조선왕조의 건국 배경을 고찰함과 더불어, 건국 이후 왕조의 통치 체제가 확립되어가는 과정을 분석해, 조선왕조의 건국을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천민을 제외한 모든 양인 계층이 참여하는 민본적 유교 국가의 성립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왕조 개국공신의 출신 배경에 대한 분석을 시도해, 이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곤궁한 계층 출신이고 출신 신분도 미천한 부류였음을 밝혔다.
그리하여 소수의 사대부 지식인과 무인들을 비롯한 조선왕조 건국 주역들의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한미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주도해 이끌어갔던 조선왕조가 국민 전체의 이해를 조정하는 전반적인 사회 개혁을 단행해 민심의 지지를 얻으려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단서를 부각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 초기 태종조·세종조의 사전(私田)의 하삼도(下三道) 이급(移給)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사전 정책을 고찰해, 고려 말 이래로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어왔던 사전 문제가 결국 사전의 양적인 축소와 전주(田主)의 사전에 대한 지배력의 감소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신왕조의 경제 정책이 소수의 대지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양인 계층을 위한다는 기본 목표를 지녔음을 강조하고 민본 국가로서의 일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한량(閑良) 문제와 조선 초기 상급서리(上級胥吏) 성중관(成衆官)에 관한 고찰을 통하여 특정한 지배 계층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양인 계층이 중심이 되어 참여하는 민본 국가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당시 사회가 고려시대나 조선 후기에 비해 문벌주의 내지 귀족제적인 요소를 크게 탈피하였다는 점에서 근대적 관료 제도의 요소를 적지않이 내포한 사회였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양반·중인(中人)·상인(常人)·천인(賤人)으로 신분이 나누어진 가운데 양반이 지배 신분층을 이루게 되는 것은 조선 후기의 상황이며, 조선 전기인 15, 16세기에는 특정한 소수 지배 신분층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2부에서 조선 초기의 사회 계층과 사회 이동에 대한 시론적 구상을 제시해, 지금까지 학계에서 통용되어오던 양반의 개념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양반은 당시의 지배 신분층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라 단지 유직자(有職者)의 대명사로 쓰여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양반이 지배 신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며, 15, 16세기에는 소수의 특권적 지배 신분이 존재하지 않았고, 양천신분제(良賤身分制) 하에서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양인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천인만을 제외한다면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당시 사회는 역사상 가장 신분 이동이 확대된 사회로서 근세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끝으로 양반연구를 비롯해 신분·토지제도·사상사 연구를 포함한 조선 전기사 연구에 대한 학설사적 추이를 개관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관직독점 신분의 존재를 인정하는 양반관료제설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였다. 따라서 양반·중인·상인·천인의 4분법적 신분구조 대신 양인·천인의 2분법적 신분 구조를 통해 당시 사회를 분석함으로써 양인층 내부의 계층적 유동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고려 후기 특히 고려 말기 이래의 피지배층의 지위 향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