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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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아에서 근무하던 하급관리층.
내용 요약

서리는 고려·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아에서 근무하던 하급관리층이다. 이서·아전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서리층이 아직 신분 계층으로 확립되지 않아 양반관료와의 차별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양반·향리 출신이 이서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층의 배타적 특권이 강화되면서 문무 관료와 엄격히 구분되고 관료 진출이 억제되었다. 하급행정·대민 업무에 종사하면서 조선 양반관료체제의 하부조직을 형성하였다. 서리층은 경제적 처우가 보장되지 않아 대민행정에서 부정과 수탈을 일삼으면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회병폐로 지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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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아에서 근무하던 하급관리층.
내용

이서(吏胥) · 아전(衙前)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들은 근무지에 따라 경아전(京衙前) · 외아전(外衙前)으로 구분되었다. 일반적으로 서울의 경아전은 서리라 지칭하였고, 지방의 외아전은 향리(鄕吏)로 통칭되었다.

고려시대는 서리층이 아직도 신분계층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양반관료와 차별이 심하지 않아, 양반이나 향리 출신으로서 이서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또한, 여기서 문무품관(文武品官)으로 거의 제한 없이 승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품관들과 같이 과전(科田)녹봉(祿俸)을 받았는데, 녹봉은 28등(錄事) 이하, 전시과(田柴科)는 15 · 16과(主事) 이하를 받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양반층의 배타적 특권이 강화되면서 서리는 문무관료와 엄격히 구분되었다. 따라서 철저한 열등적 신분차별을 가해 관료로 진출하는 것을 억제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결국 양반관료체제하의 하급행정실무나 말단 경찰 · 군사업무를 전담하는 특수신분, 즉 중인층의 일부인 이서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은 상민(常民)의 군역과 같은 신역(身役)의 하나로 간주되어, 보수가 지급되지 않았다. 즉, 1445년(세종 27) 외역전(外役田)이 폐지된 뒤 일체의 과전이나 녹봉이 지급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경제적 불안으로 말미암은 부정과 비리의 소지를 남겨 놓았다.

경아전인 서울의 서리는 동반아전(東班衙前)과 서반아전(西班衙前)으로 크게 나뉘었다. 동반아전은 상급의 녹사층(錄事層)과 하급의 서리층(書吏層)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녹사와 서리들에게도 품계가 부여되고 정직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으나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즉, 녹사는 종6품에서 거관(去官)해 수령취재(守令取才)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 서리는 종7품 또는 종8품에서 거관해 역승(驛丞) · 도승(渡丞)직에 임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수는 극히 적었고, 또 거관할 때까지 각 품계마다 녹사는 514일, 서리는 2,600일씩 의무복무를 마쳐야만 가능하였다.

그러나 서리직은 6개월마다 교대근무하는 체아직(遞兒職)이었으므로, 거관에 필요한 총 근무일수를 채우기는 매우 어려웠다.

서반아전은 조례(早隷) · 나장(羅將) · 제원(諸員)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뒤에 사령(使令)으로 통칭되었다. 이들 역시 소정의 임기를 채우면 하급무관직이나 체아직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의 서리나 지방의 향리는 양반관료계층으로부터 철저히 차별되어 정치적 의사결정이나 제반 특권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하급행정실무와 대민업무(對民業務)에 종사하고 해당지역 사정이나 소관업무에 정통해 조선 양반관료체제의 하부조직을 형성하였다. 그래서 이를 이용해 일반민중을 수탈하고 통제함으로써 일정한 특권과 실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서리층은 경제적 처우가 보장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대민행정에서 부정과 수탈이 필연적으로 따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회병폐로 지목되었다. 이들은 대개 서울이나 도시의 관아 근처에 살았으므로 항상 시세에 밝고 처신이 민첩해 일정한 경제력을 유지하였다.

특히, 전통에 대한 집착이 상대적으로 적어 근대초의 개화기에는 가장 먼저 근대문물을 수용한 계층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경제적 기반과 조기의 신교육은 한국근대사회에서 새로운 상류계층으로 부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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