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의 이야기는 『삼국유사』 권3 탑상(塔像)편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조에 등장한다. 조신은 명주(溟州)에 있던 세달사(世達寺:훗날 흥교사(興敎寺))의 장사(莊舍)를 관리하는 지장(知莊)이었다. 이 이야기는 설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왕경 사찰 소속의 지방 토지의 존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신라 사회에서 사원 전장의 형성은 7세기부터 사례가 나오고, 8세기에는 지배층의 전장 희사, 국가에 의한 장생표 설치, 지방 사원의 전장 운영 등 다양한 성격의 전장이 등장한다. 9세기 초 황룡사 전장의 사례는, 새로 건립된 선종 사원이나 지방 사원만이 아니라 오래된 도읍의 주요 사원에도 전장이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조신이 지장을 맡았던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 하대로 추정하고 있다.
조신은 명주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본 뒤 매혹되어 낙산사(洛山寺) 대비상(大悲像: 관음보살상) 앞에서 그 사랑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조신이 찾아간 관음보살상을 『삼국유사』에서는 의상이 낙산사를 건립한 후 조성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의상법사가 당에서 돌아와 관음보살[大悲]의 진신(眞身)이 이 해변의 굴 안에 산다는 것을 듣고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관음보살의 주처인 보타락가산에 대한 신앙의 수용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한편 조신은 수년 동안 정성을 다하였으나 그녀가 이미 혼인하여 자기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을 알고, 관음보살상 앞에 가서 원망하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뜻밖에 김흔의 딸을 만나 고향으로 가서 살림을 살게 된다. 40년 동안 깊은 정을 나누고 살면서 자식 5남매를 거느리게 되었지만, 가난하여 사방을 떠돌아다니며 10년 동안 걸식하다가 큰 아들은 굶어 죽고 딸은 동네 개에게 물려 드러눕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통곡하다가, 어쩔 수 없어 헤어져서 살아갈 길을 찾으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후 그의 머리가 백발이 되어 있었다. 조신은 인생의 허무와 회한을 느끼고,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였다고 한다.
이 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이광수(李光洙)는 「꿈」이라는 작품을 썼고, 다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