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당시에는 자은종이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고 유가업(瑜伽業)이라 불렀다. 1111년(예종 6)에 세운 「금산사혜덕왕사비」에서도 ‘대유가업금산사(大瑜伽業金山寺)’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자은종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최초의 용례는 1117년(예종 12)에 작성된 「최계방묘지명」에 나온다. 최계방(崔繼芳, 1045~1116)의 동생인 최상지가 출가하여 자은종 승통이 되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최계방의 둘째 아들인 관오(觀奧, 1096~1185)는 삼촌 최상지에게 출가하여 수좌에 오르고, 법천사, 수리사(修理寺)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유가(瑜伽)라는 명칭도 줄곧 보이는데, 1294년(충렬왕 20)에 죽은 혜영(惠永, 1228~1294)의 비문인 「동화사홍진국존비(桐華寺弘眞國尊碑)」에는 ‘대유가 동화사주지 오교도승통(大瑜伽桐華寺住持五敎都僧統)’이라고 하여 자은종이 아닌 유가의 명칭 그대로를 쓰고 있다.
자은종이라는 명칭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자정국존(慈淨國尊) 미수(彌授)의 「법주사자정국존비(法住寺慈淨國尊碑)」에서이다. 이 비문에는 ‘자은국일대사(慈恩國一大師)’, ‘대자은종사(大慈恩宗師)’, ‘자은교관(慈恩敎觀)’ 등의 표현이 보인다. 따라서 이 비문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종단의 이름이 자은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수는 혜영보다 20년쯤 뒤의 인물이다.
자은종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도 계속 등장한다. 1406년(태종 6) 3월의 의정부 계청(啓請)에는 불교 종파 11종 중에 자은종이 들어 있고, 그 이듬해 7종으로 축소된 종파의 이름 속에도 자은종이 보인다. 그러나 1424년(세종 6) 선종과 교종으로 종단이 통합되었을 주1, 자은종은 교종 속에 포함되어 그 이름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