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하해방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무덤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군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고구려
소재지
중국 지린성
내용 요약

집안하해방고분군(集安下解放古墳群)은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무덤군이다. 1997년에 조사된 50기 가운데 36기는 동실묘이고, 14기는 석실봉토분이다. 이 중 동실묘는 11기, 석실봉토분은 14기가 현재 남아 있다. 14기의 석실봉토분 중 3기는 벽화분이다.

정의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무덤군.
위치와 입지

집안하해방고분군은 집안 평지성에서 압록강을 따라 동쪽으로 약 9㎞ 떨어진 곳으로, 압록강이 곡류하며 생긴 충적 대지와 용산(龍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완만한 산기슭 사이에 있다. 집안마선구고분군, 집안칠성산고분군, 집안만보정고분군, 집안산성하고분군, 집안우산하고분군과 함께 통구분지 무덤군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집안분지의 동쪽 방벽인 용산 너머, 통구분지 바깥에 자리하므로 통구분지 무덤군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규모와 연대

1966년에는 51기가 조사되었고 1997년에는 50기가 조사되었는데, 그중 25기는 망실되어 25기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7년에 조사된 50기 가운데 36기는 동실묘(洞室墓)이고, 14기는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이다. 이 중 동실묘는 11기, 석실봉토분은 14기가 현재 남아 있다. 14기의 석실봉토분 중 3기(하해방31호분, 모두루묘지, 환문총)은 벽화분이다.

하해방고분군은 고구려 시기의 주1이 1기도 없으며 석실봉토분이 약 30%에 달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체 무덤 가운데 고구려 시기의 적석총이 약 1/3을 차지하고 석실봉토분이 5% 내외인 통구분지 무덤군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묘제의 차이를 바탕으로, 하해방고분군의 조성 연대는 대체로 4세기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동실묘의 경우는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도 없고 분구도 망실되어 연대를 확정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6~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규모가 작고 고구려 시기의 큰 무덤들과 혼재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고구려 이후, 즉 발해 시기의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볼 경우, 집안하해방고분군은 5세기에 조성된 이래 발해 시기까지 사용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현숙, 『고구려 고분 연구』(진인진, 2013)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洞泃古墳群-1997年 調査測繪報告』(科學出版社, 2002)

논문

정호섭, 「고구려사의 전개와 고분의 변천 -국내성 시기 집안일대 고분의 통계분석과 GIS와의 비교를 중심으로-」(『韓國史學報』 59, 2015)
최종택, 「집안 통구분지 고구려 고분군의 조영 과정 연구」(『삼국시대 국가의 성장과 물질문화』 1,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5)
박순발, 「고구려의 도성과 묘역」(『한국고대사탐구』 12, 2012)
주석
주1

시신 위나 시신을 넣은 석곽(石槨) 위에 흙을 덮지 않고 돌을 쌓아 올린 무덤. 선사 시대부터 고구려ㆍ백제 초기에 나타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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