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

근대사
제도
대한제국기, 철도를 관할하던 궁내부 산하 기구.
제도/관청
설치 시기
1900년(광무 4) 4월 6일
폐지 시기
1905년 2월 28일
상급 기관
궁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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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철도원은 대한제국기, 철도를 관할하던 궁내부 산하 기구이다. 1900년(광무 4)에 설치되었으며, 경부철도 · 경인철도 관련 사무를 전담하였다. 기존 통신사 철도과와 농상공부 소관 철도국의 업무를 인수하여 활동하였으나 이후 설립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유명무실화되었다.

정의
대한제국기, 철도를 관할하던 궁내부 산하 기구.
설치 목적

대한제국 정부는 산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자력에 의한 철도 건설을 적극 추진하였다. 철도사업 감독으로 전환국이용익(李容翊)이 임명되었고, 철도 부설을 염두에 두고 서울-목포 간, 서울-원산-경흥 간, 원산-평양-진남포 간, 경흥-의주 간의 지형 답사도 이루어졌다. 외국인의 토지 점탈 등으로 생활 기반을 잃은 농민들도 철도의 부설권과 인민의 생존 기반인 토지를 절대로 외국인에게 양도하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었다.

기능과 역할

대한제국 정부는 우리 스스로 철도를 설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1900년(광무 4) 4월 6일 포달(布達) 제56호로 궁내부 산하 내장원에 철도원(鐵道院)을 새로 두었다. 철도원은 황실 소속 철도를 관장하였는데 경인철도와 경부철도를 직할하여 일체 사무를 처리하는 사무를 맡았다. 이때 통신사 철도과와 별도로 존재하던 농상공부 소관 철도국의 업무도 철도원으로 통합되었다.

내용/활동

소속 직원은 칙임 총재 1명, 감독 2명, 주임 기사 3명, 판임 주사 3명과 기수 2명으로 구성하였다. 1901년(광무 5) 5월 1일 감독 3인, 기사 6인, 주사 6인, 기수 4인으로 증원되었고, 기사 중 3인은 철도과장, 문서과장, 회계과장을 겸임하였다. 1902년(광무 6) 8월 이후 철도원 철도과를 서무과로 개정하고, 기사 6인은 4인으로, 주사 6인은 7인으로 조정하며, 부총재를 두었다.

변천사항

경부철도회사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1901년(광무 5) 2월 고종 황제가 주식 2,000주, 황태자가 1,000주, 영친왕이 500주를 사서 소유하기로 계획을 세운 바 있었다. 그러나 자본금 준비 문제로 우리 측의 철도 부설은 이후에도 지지부진하였고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철도원도 러일전쟁 시기인 1905년 2월 28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매천야록(梅泉野錄)』
「칙지(勅旨)」, 1901년(광무 5) 2월(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
『황성신문(皇城新聞)』

단행본

정재정, 『일제침략과 한국철도-1892~1945』(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999)
송병기, 박용옥,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3(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1)
『조선철도사』(조선총독부 철도국, 1915)

논문

이윤상, 「1894~1910년 재정제도와 운영의 변화』(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집필자
조재곤(서강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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