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군읍지(靑山郡邑誌)』는 충청북도 청산군(靑山郡) 지금의 [옥천군 청산면]에서 편찬하였다.
1책 4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6.5㎝, 가로 24.7㎝이다. 표제는 ‘청산군읍지급지도(靑山郡邑誌及地圖)’이고, 권수제는 ‘청산군읍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관직(官職), 산천,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교량(橋梁), 사찰, 전답(田畓), 조적(糶糴), 봉름(俸廩) 순으로 구성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면 구성과 면별로 소속된 각 ‘이(里)’의 명칭, 관아로부터의 거리와 호구 수를 기록하였다. 1897년(광무 1) 정유년 기준으로, 청산군의 총호구는 원호(元戶)가 2,302호이며, 인구는 남자가 4,043명, 여자가 3,060명이라고 하였다. 산천 항목에는 고을의 진산인 기성산(己城山), 남천(南川) 등 주요 산과 하천의 위치 및 관련 정보를 기록하였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와 비교해 보면, ‘방리’로 시작해 전개되는 항목 구성은 비슷한 반면, 성씨, 풍속, 물산, 고적, 인물, 진공, 조적, 전세, 대동, 균세, 군병 등의 항목은 빠져 있다. 형승 항목 등에서 새롭게 내용을 보탠 것으로 표시하였으나 이전 읍지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도 있고, 창고 항목에서와 같이 기존 읍지에 있던 내용을 고쳐 새롭게 쓰기도 하였다. 읍사례 항목이 빠진 것은 『호서읍지』와 다른 점이다.
대한제국기의 읍지상송령에 따라 청산군에서 중앙에 보고한 읍지 내용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당시의 사정을 반영한 방리 항목과 새롭게 덧붙이거나 고쳐 쓴 창고 항목을 통해 청산 지역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