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백조(白潮)』 3호에 발표되었다. 할머니의 임종을 둘러싸고 모여든 가족들의 인정의 기미를 날카롭게 포착한 매우 특이한 상황소설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시골 본가로 내려가는 데에서 시작된다. 내려가서 그가 발견한 것은 전통윤리의 붕괴이다. 그는 처음 밤새도록 염불을 그치지 않는 둘째큰어머니의 효성에 감탄하지만, 그것이 다른 가족들의 태만함을 꾸짖으려는 ‘도덕적 우월’의 표시임을 깨닫는다.
빈사에 빠진 할머니에게 있어 둘째큰어머니의 염불은 시끄러운 잡음에 지나지 않으며, 둘째큰어머니의 염불 자체도 무언중에 할머니가 하루바삐 끝장나기를 기다리는 다른 가족들의 은밀한 욕구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는 오래 누워 등에 상처가 난 할머니를 보고 자손들의 불효를 질책한다. 처음에 그는 그 책임을 계모에게 물으려 하나 “제아무리 효부라 한들 하루도 몇 번 흘리는 뒤를 그때 족족 빨아댈 수 없음”을 인정하고, 사방에 흩어져 제 입 풀칠하기에 바쁜 전통적 대가족제도의 붕괴에서 그 원인을 찾게 된다. 결국, 고비를 넘기고 할머니의 죽음이 시일을 끌자 자손들은 모두 흩어지고 할머니는 외롭게 죽는다.
이 작품은 자전적 요소가 농후한 1인칭소설이지만 「빈처」 등의 자기 주위에 관한 소설과는 달리 작중의 ‘나’가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난 한 세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작중 화자(話者)는 정직한 관찰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아름다운 봄날, 깨끗하게 춘복(春服)을 갈아입고 친구들과 우이동 벚꽃놀이를 나가다가 사망전보를 받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객관적이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로 시작하여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전보로 끝나는 구성의 묘미도 매우 탁월하다.
이처럼 이 소설은 표현 기교로서의 사실주의라는 측면에서 그 우수성이 높이 평가되지만, 소박한 신변세태 묘사에 그쳐버림으로써 사회의 진정한 문제 파악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 한계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