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죽음」은 현진건이 『백조』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작품에서 ‘나’는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본가로 내려간다. 할머니의 임종을 앞둔 가족들은 할머니의 고통을 염려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이 끝나기를 바란다. 작품에서는 그 원인을 제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현실 속에서 붕괴되어 버린 전통 윤리에서 찾는다. 염려할 것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자손들은 모두 떠나지만 며칠 후 할머니의 부고를 받게 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후에 보다 넓은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그리는 계기가 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은 중심인물 ‘나’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본가로 내려가는 데서 시작된다. 시골 본가에 도착한 내가 먼저 발견한 것은 전통 윤리의 붕괴이다.
나는 처음에 밤새도록 염불을 그치지 않는 주1의 효성에 감탄하지만, 그것이 다른 가족들의 태만함을 꾸짖으려는 ‘도덕적 우월’의 표시임을 깨닫는다. 주2 상태에 빠진 할머니에게 중모의 염불은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중모의 염불에는 무언중에 할머니가 하루 빨리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은밀한 욕구 역시 담겨 있다.
나는 오래 누워 욕창이 생긴 할머니의 등을 발견하고 자손들의 불효를 질책한다. 처음에 그 책임을 계모에게 물으려 했지만 ‘제 아무리 효부라 한들 하루에도 몇 번 흘리는 뒤를 그때마다 족족 빨아댈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제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각자의 현실 속에서 붕괴되어 버린 전통적 대가족 제도로부터 그 원인을 찾게 된다.
자손들은 할머니의 고통을 염려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오늘내일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과는 반대로 할머니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었다. 몇 주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 안심한 자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떠난다. 나도 할머니가 곧 완쾌되실 거라고 위로하며 서울로 돌아오지만, 며칠 후 할머니의 부고를 받게 된다.
이 작품은 자전적 요소가 드러나는 1인칭 소설이지만, 「빈처」 · 「술 권하는 사회」 등의 소설과 달리 작중의 ‘나’가 자신이 아니라 할머니의 죽음과 그것을 통해 경험하게 된 인정을 그린다. 즉, 작중 화자(話者)는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설은 봄을 맞아 깨끗하게 봄옷[春服]으로 갈아입고 친구들과 우이동 벚꽃놀이를 나가다가 할머니의 부고를 받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의 시작이 “조모주 병환 위독”이라는 전보로 시작되었음을 고려하면, “오전 3시 조모주 별세”라는 부고로 끝나는 구성의 묘미가 탁월하다. 특히 부고를 받는 마지막 장면이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어 객관적이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표현 기법으로서의 사실주의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소박한 신변 세태 묘사에 그쳐버림으로써 사회의 진정한 문제를 파악하는 데 미치지 못하였다는 한계 역시 지적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가 초기의 신변 소설에서 객관적인 심리 묘사 소설로 변화하는 단초가 되었고, 작가가 이후에 보다 넓은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그리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