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4월 26일부터 1934년 2월 15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고, 그 뒤 1948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1958년 『동인전집』1(정양사) 등에도 수록되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음산한 겨울에 죽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소설은 외척인 안동 김씨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제국주의의 약육강식이라는 국제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자인 대원군의 죽음을 애도한다. 역경의 시대에 흥선군이 살아남기 위하여 상갓집 개처럼 행세하며 김씨 일파로부터 받는 수모를 참아내는 것은 박탈당한 종친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위장 행위였다.
파락호(破落戶 : 행세하는 집의 자손으로서 난봉이 나서 결딴난 사람) 행세를 하며 대갓집, 기생집, 잔칫집을 기웃거리는 일화와, 아들 명복(命福)이를 제왕으로 만들기 위한 왕자 교육을 시키는 이중적 생활을 한다.
흥선은 천하장안(千河張安) 등의 한량들과 서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서원(書院)의 부패한 양상을 낙향한 양반의 행태를 통하여 보여주고, 매관매직의 극단적 실화로 벼슬을 얻는 황구(黃狗)의 일화를 제시하기도 한다.
전주 나씨(全州羅氏)의 밥을 주는 행사를 그려서 기아선상에 있는 백성의 참상을 그려낸다. 조성하(趙成夏)를 중간에 두고 외척 안동 김씨 일파에게 밀려난 대왕대비인 조 대비와 선을 대놓고 병약한 철종의 승하 때 아들 명복으로 하여금 조 대비의 지아비인 익종의 대를 잇게 공작하고, 드디어 성공한다.
대원군은 왕의 위에 군림하여 청정함으로써 외척인 안동 김씨 일문의 세를 꺾고,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사색당파를 혁파하고, 서원을 철패하여 유림과 양반의 행패를 척결한다.
이 작품은 전반부에서 흥선군과 안동 김씨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원대한 포부를 지닌 흥선군의 시련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결국 흥선군을 영웅화함으로써 본격적인 역사소설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주인공의 야망과 그 실현 과정에 집착할 때,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그리며, 역사적 대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역사소설과는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피소드로 삽입된 여러 개의 일화들은 작품의 구성상 문제점을 지니면서도 한 시대의 모습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