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외사 ()

한문학
문헌
1854년경에, 조선 후기에 활동한 조희룡(趙熙龍)이 중인 계층의 인물 43명의 행적을 모아 편찬한 전기(傳記) 작품집.
이칭
이칭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 호산기(壺山記), 호산외기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44년(헌종 10), 1854년(철종 5)
저자
조희룡(趙熙龍)
권책수
1책
권수제
호산외사(壺山外史), 호산기(壺山記),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
판본
필사본
표제
호산외사(壺山外史), 호산기(壺山記),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 호산외기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호산외사(壺山外史)』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조희룡(趙熙龍)이 중인 계층의 인물 43명의 행적을 모아 1854년경에 편찬한 전기(傳記) 작품집이다. 현재 4종의 필사본이 확인되는데, 서명(書名)이 각각 다르다.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호산기(壺山記)』·『호산외사』 전사본과 원본이다. 이 책은 여항인을 입전한 독립된 저술로써 여항인과 여항 문화를 역사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정의
1854년경에, 조선 후기에 활동한 조희룡(趙熙龍)이 중인 계층의 인물 43명의 행적을 모아 편찬한 전기(傳記) 작품집.
서지사항

『호산외사(壺山外史)』는 현재 4종의 주1이 확인된다. 개인 소장의 전사본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전사본 『호산외사』,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전사본 『호산기(壺山記)』, 저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는 개인 소장의 원본 『호산외사』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호산외사(壺山外史)』는 1844년(헌종 10)에 32칙 35명을 입전(立傳)한 『호산외사』 1차 완성본이 만들어졌고, 1854년(철종 5)에는 7칙 7명이 추가된 2차 완성본이 만들어 졌으며, 그 이후에 「함진숭전(咸鎭崇傳)」이 포함된 40칙 43명이 수록된 최종본이 만들어졌다. 현행 주2은 모두 2차 완성본의 전사본이다. 요컨대 개인 소장의 『이후시금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의 『호산외사』,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호산기』, 개인 소장의 원본 『호산외사』 순서로 주3 것이다.

한편 『호산외사』는 서명(書名)이 여러 개 존재하는데, 『이후시금록』‧『호산외기』(『호산기』 포함)‧『호산외사』이다. 책이 변개된 순서로 보면 ‘녹(錄)’ · ‘기(記)’ · ‘사(史)’로 변화한 것인데, 이는 저자가 자신의 저술을 기록(記錄)이 아닌 주6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구성과 내용

『호산외사』 권두에는 조희룡(趙熙龍)주7)가 붙어 있다. 수록된 인물은 43명이다. 그 입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활동한 주8들을 주요 입전 대상으로 삼았다. 출생이 서울이 아닐지라도 서울이 주요 활동 무대인 인물들만을 주9. 100년 이내의 인물들을 입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저자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들은 인물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43명 중에서 적어도 13명은 저자와 직접 교유를 했던 사람들이다. 다음으로 언행 · 문장 · 주10‧유협 등의 분야에서 특별한 업적을 쌓은 인물을 중심으로 입전했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하거나 옛사람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들을 입전의 소재로 삼았다. 특히 임금의 지우를 입은 인물들을 중시했다. 문예적 성격을 강조하여 흥미를 유발시킬 만한 인물을 뽑아 입전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사서(史書)나 문집을 참조한 것이 아니고 저자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들은 인물들을 채록한 것이기 때문에, 정통 한문학 양식인 전(傳)에서 보이던 본관이나 가계는 생략하고 바로 행적 자체를 기술하는 체재를 취하면서도 평찬(評贊)을 뒤에 붙였다. 이와 같은 점은 주11이 『사기(史記)』 열전(列傳)에서 불우한 인사들을 입전하여 후세에 전하겠다는 의지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호산외사』는 조선 후기 주12 문학사의 줄기를 이루는 대표적인 저술이다. 여항인을 입전하여 독립된 저술로 편찬함으로써 여항인과 여항 문화를 역사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고, 또한 문학적 성과를 거둔 전기 작품집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호산기(壺山記)』
『호산외사(壺山外史)』

단행본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역주, 『이항견문록(里鄕見聞錄)』(한길아트, 1999)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역주, 『조희룡전집(趙熙龍全集)』(한길아트, 1999)
이성혜, 『조선의 화가 조희룡』(한길아트, 2005)

논문

박철상, 「『이후시금록(以後視今錄)』을 통해 본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사(壺山外史)』」(『한문학보』 29, 우리한문학회, 2013)
한영규, 「중인층 傳記集 『壺山外記』의 성격과 위상」(『고전문학연구』 29, 한국고전문학회, 2006)
주석
주1

손으로 써서 만든 책. 우리말샘

주2

전하여 내려온 책. 우리말샘

주3

다르게 바뀌어 새롭게 고쳐지다. 우리말샘

주4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 우리말샘

주5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 우리말샘

주6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 우리말샘

주7

자기가 엮거나 지은 책에 서문(序文)을 씀. 또는 그 서문. 우리말샘

주8

여염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벼슬을 하지 않는 일반 백성들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9

필요한 자료를 찾아 모아서 적거나 녹음하다. 우리말샘

주10

재능과 기예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1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B.C.145?~B.C.86?). 자는 자장(子長). 기원전 104년에 공손경(公孫卿)과 함께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하여 후세 역법의 기초를 세웠으며, 역사책 ≪사기≫를 완성하였다. 우리말샘

주12

백성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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