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09년, 서울 도동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음악단체.
설립 목적
변천 및 현황
조양구락부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고자 1911년 2월에 정악유지회(正樂維持會)가 구성되었으며, 발기인으로 이준용 · 박영효 · 윤택영 등 12인이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6월에 이왕직(李王職)으로부터 악도장려금(樂道獎勵金)으로 일시금 2,400원과 매달 200원을 보조 받아 안정적인 재정 상태를 확보하게 되면서 발전적 해체를 하게 되고, 본격적인 음악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로 명칭과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주요 활동
이를 위해 교과 감독에 함재운, 가악부 교사장에 하순일, 가악 교사에 신경선, 장덕근, 이영환, 무용 교사에 이병문, 함화진, 음악부 교사장에 김경남, 현금 교사에 이병문, 조이순, 가야금 교사에 김진석, 이병문, 양금 교사에 백용진, 김현주, 휘금(徽琴) 교사에 고상익, 풍금 교사에 김인식 등을 교사진으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국권을 잃어가던 당시의 어지러운 정국과 열악한 재정 상태 등으로 인해 본격적인 교육활동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한편, 여성으로 구성된 관기 출신 기생들의 연합체였던 기생조합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권도희, 『한국근대음악사회사』(민속원, 2004)
- 장사훈, 『여명의 동서음악』(보진재, 1974)
논문
- 박은경, 「한국최초의 민간음악교육기관 조선정악전습소 연구」(『음악과 현실』 21, 민족음악학회, 2001)
- 강혜인, 「한국 개화기 음악교육활동의 역사적 의의: 조선정악전습소를 중심으로」(경북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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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칠현금’을 달리 이르는 말. 줄을 괴는 기러기발 대신 열세 개의 휘(徽)를 박아 손 짚는 자리를 표시하여 놓았다는 데에서 나온 이름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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