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현실과 경직된 체제 이데올로기가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와 역사성의 맥락에서 그렸다. 극중 시간은 해방 직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를 다루고 있다. 평양 김일성대학 의학부 산부인과 교수인 한영덕은 전쟁 중 당 고위 간부 가족보다는 생명이 위급한 일반 환자를 치료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된다. 이후 인민군의 평양 철수 때 총살을 당하려던 순간 기적적으로 살아나 단신 월남한다.
1951년 아들을 찾기 위해 포로수용소 부근에서 배회하다가 적성용의자로 몰려 수사를 받기도 한다. 월남한 여동생 한영숙의 집에 기거하며 무면허 의사 박가와 동업으로 낙태수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박가와 낙태수술 문제로 갈등을 겪던 한영덕은 재혼과 동시에 시립병원에서 일하며 안정된 삶을 꾸리려 한다. 그때 박가의 투서로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간첩혐의는 벗었지만 의료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다. 출옥 후 가출하여 세상을 등지고 살다가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장의사를 하던 중 죽는다.
소설과 두드러지게 달라진 부분은 한영덕의 삶을 조건 지운 시대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장면들을 삽입했다는 점이다. 한영덕의 비극이 분단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해 강대국 지도자들의 카이로회담, 얄타회담 등 한국신탁통치에 대한 논의, 미국의 마샬 장군과 참모가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 지도에 선을 그으며 한반도를 분단하는 장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입장과 중공군 개입, 이승만 정권의 부패상, 휴전에 관한 다큐멘터리 등을 삽입했다.
이 극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방법론을 한국 창작극에 본격적으로 실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한영덕의 파란만장한 삶을 주축으로 한 개인적 삶이란 서사구조에, 분단을 결정한 강대국의 정치회담 등 국제 정치역학, 전쟁, 부패한 자유당 정권, 박정희 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와 억압적 규율권력 등 거시적인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해설, 기록, 레뷰, 몽타주 등의 서사극적 미학, 플래카드, 지도, 놀이, 노래, 춤, 역할바꾸기 등 서사적 거리를 만들어내는 장치들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이후 연극계에 서사극의 유행이 일어났으며, 연우무대 역시 1980년대의 주도적 극단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