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70년경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3 · 1운동 소식을 듣고 백남식, 이용화 등과 사발통문을 돌리고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동지들과 3월 28일 가납리로 나아가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1870년경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광적면 만세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양주군 만세운동은 3월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광적면 미금리에서 시작되어 관내로 확산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진성은 백남식(白南式), 이용화(李龍和) 등과 만세운동을 계획한 후,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시위 계획을 알리는 한편, 일장기를 변형하여 태극기 등을 만들었다. 당초 계획은 3월 28일 오전 9시 효촌리에서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화재가 발생하여 이를 진압한 후, 가납리 면소재지로 주민들과 나아갔다.
시위대가 도착할 무렵 광적면과 백석면 주민들은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해산하려는 순간이었다. 다시 모여든 시위 군중이 900여 명으로 늘어나자 오후 4시경에 김진성은 앞장서서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광적면장 이하용(李河鎔)과 의정부에서 파견된 일본 헌병은 주모자를 찾았으나, 시위 군중은 격렬하게 독립만세를 부르며 저항하였다. 당황한 일본 수비대는 군중을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하였다. 당시 사상자는 40여 명에 달할 만큼 너무나 참혹하였다. 만세시위를 이끌던 김진성도 동지 백남식, 이용화와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