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고려 초기에 축조된 청자요지로서, 1938년 노모리 켄[野守健]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1982년에는 최순우에 의해 다시 조사되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유적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2차 발굴 조사에서 길이 14m의 1호 가마가 확인되었으며, 3차 · 4차 발굴에서 길이 43m의 2호 가마가 조사되었다.
이외에 3호 가마 1기가 더 확인되었고, 1 · 2호 가마 퇴적구에서 층위가 확인되었다. 하층부터 Ⅰ층은 전축요[벽돌가마] 폐기층, Ⅱ층은 토축요[진흙가마] 폐기층, Ⅲ층은 토축요 페기 후 퇴적층, Ⅳ층은 후대 교란 퇴적층으로 구분되었다.
2016년 12월 16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34호 '진안 도통리 중평 청자요지'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9월 2일 사적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로 승격되었다.
1 · 2호 가마는 벽돌 벽체 내부에 진흙 벽체가 조성된 흔적이 있어 벽돌로 축조된 전축요를 토축요로 개축한 것이 확인되었다. 1호 가마는 개축 단계의 전축요이며, 그 내부에 조성된 토축요를 2호 가마로 명명하였다.
1호 가마는 2호 가마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어서 벽돌 벽체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2호 가마는 전체 길이가 43m이며, 단실(單室)의 반지하식 등요(登窯)로 진흙, 갑발, 석재로 축조되었다.
출토 기종은 완, 발, 화형접시, 잔, 잔탁, 병, 주자 등 초기 청자요지에서 확인되는 전형적인 구성을 보인다. 이외에도 원통형, 투구형, 발형 등의 갑발(匣鉢)도 초기 청자요지에서 보이는 형태가 대부분 확인되었다. 형태의 층위가 확인된 퇴적구에서 선해무리굽완, 중국식 해무리굽완, 한국식 해무리굽완, 퇴화해무리굽 단계까지 모두 확인되었다.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전북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경 초기 청자요지로서 주목되었다. 이 초기 청자요지에서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전환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청자 제작 기술이 남쪽 지방으로 전파되는 과정까지 볼 수 있는 도자사적 ·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