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은 보조 지눌(普照知訥)의 제자이자 조계산 수선사(修禪社) 제2세인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이 편집한 공안집이다. 내용적으로는 석가모니를 비롯한 선종의 역대 조사들의 공안과 그에 대한 후인들의 염(拈) · 송(頌) 등 착어(著語)를 모아, 선종의 전등(傳燈) 순서에 따라 배열한 책이다. 당대(唐代) 선사들의 공안이 가장 많으며 북송(北宋) 때까지의 선승들의 공안이 수록되어 있다.
본래는 혜심이 제자 진훈(眞訓) 등과 함께 1,125칙의 공안 및 그에 대한 착어들을 모아 1226년(고려 고종 13)에 30권의 『선문염송집』을 간행하였는데, 이후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에 천도할 때 목판이 소실(燒失)되었다. 이에 혜심의 후배로 수선사 제3세 사주가 된 청진국사(淸眞國師) 몽여(夢如, ?∼1252)가 새로 347칙의 공안과 착어를 추가하여 새롭게 편집하여 당시 집권자 최우의 아들이자 혜심의 제자였던 만종(萬宗)의 후원을 받아 1243년(고종 30)에 분사대장도감에서 간행하였다. 정안(鄭晏)이 쓴 발문에 간행 경위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30권으로 『고려 대장경(高麗大藏經)』 보유판(補遺版)의 막함(邈凾) · 암함(巖凾) · 수함(峀凾)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저본으로 하여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다시 판각되었다. 현재 고려 대장경 보유판 외에 1549년 강원도 금강산 사찰 간행본, 같은 해 지리산 신흥사(新興寺) 간행본, 1568년 법홍산 법흥사(法興寺) 간행본, 1634년 수청산 용복사(龍復寺) 간행본, 1636년 전남 보성군 천봉산 대원사(大原寺) 간행본 등이 전하고 있다. 고려 대장경판 보유판 인행본이 『고려 대장경』 영인본에 수록되었고, 『한국불교전서』 제5책에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와 회편되어 수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송대에 이르러 소위 공안집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공안집이란 역대의 선승들이 남긴 공안과 공안에 대한 후인들의 염 · 송 등의 착어를 모은 것이다.대표적인 것으로는 북송 때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편찬한 『벽암록(碧巖錄)』과 종영(宗永)이 편찬한 『종문통요집(宗門統要集)』 등이 있다.
수선사 제2세 사주인 진각국사 혜심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의 등사(燈史)와 공안집 등에서 1,125칙의 공안과 그에 대한 착어들을 모아 『선문염송집』이란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염(拈)’은 공안의 핵심을 집어내는 평가이고, ‘송(頌)’은 공안의 취지를 시로써 간명하게 압축하여 드러내는 평가이다. 염과 송 외에 상당과 소참 등의 형식도 있지만 '염송'이라고 이름한 것은 염과 송이 공안에 대한 평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후에 수선사 제3세 사주가 된 청진국사 몽여가 혜심이 편찬한 것에 347칙의 공안과 착어를 추가하여 증보 간행하였다. 그런데 혜심과 몽여가 모은 공안의 수를 합하면 1,472칙이지만 현재 전하는 『선문염송집』에 수록된 공안의 수는 1,463칙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제137칙의 공안은 석가모니의 일화를 공안으로 구성한 것이고, 제3861칙의 공안은 경전의 문구를 공안으로 하였다. 제6297칙은 서천(西天), 즉 인도의 보살과 조사들의 공안을 수록하였고, 제981463칙은 중국과 한국 선사들의 공안을 수록하였다.
본서에 채록된 공안의 주인공은 349명으로서 북송 대의 공안집인 『종문통요집』(1093년 간행)의 614명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그러나 공안이나 착어의 양은 압도적으로 많다. 그 이유가 본서에서는 특정의 조사에 의한 공안과 그것에 대한 후인의 착어를 가능한 한 많이 채록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공안의 주인공들은 주로 당대(唐代)의 선승들로서, 공안이 많이 채록된 수로 배열하면 운문문언(雲門文偃) 99칙, 조주종심(趙州從諗) 81칙, 설봉의존(雪峰義存) 45칙, 남전보원(南泉普願) 44칙, 임제의현(臨濟義玄) 29칙, 동산양개(洞山良价) 28칙 등의 순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출신의 선승을 보면, 박암(泊岩) · 대령(大嶺) · 운주(雲住) 등 3명밖에 채록되어 있지 않고 공안의 수도 5칙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본서에 수록된 공안에 대한 착어의 수는 수천 개에 이른다. 공안의 주인공은 대부분이 당(唐) · 오대(五代)의 선승들이지만, 착어는 송대(宋代)의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것은 당연하지만 송대 선문의 풍조와 혜심의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착어가 많은 공안을 순서대로 배열하면 태산파자(台山婆子) 59칙,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58칙, 영운도화(靈雲桃花) 55칙, 육조풍번(六祖風幡) 51칙, 외도문불(外道問佛) 44칙, 백장야호(百丈野狐) 44칙, 북두리장신(北斗裏藏身) 37칙, 석존천상천하(釋尊天上天下) 35칙, 여자출정(女子出定) 35칙, 삼성추출일승(三聖推出一僧) 35칙 순이다. 이는 송대 선문에서 중요시되었던 공안의 경향을 보여 주는 자료임과 동시에, 본서를 편집한 혜심이나 몽여 등 초기 수선사의 관심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중요하다.
이 책은 송대 이후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진 많은 공안집에 비교하여 분량적으로도 풍부하며, 사용에 있어서도 대단히 편리한 공안집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공안에 대한 해석이나 선풍(禪風)을 알려고 할 경우, 본서에는 시대순으로 배열된 공안의 본문과, 그것에 대한 후인의 착어가 오래된 순으로 차례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중국이나 일본의 다른 공안집에 비해서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미 산일(散逸)되어 현존하지 않는 많은 어록 등에서 발췌하고 있기 때문에 자료적 가치가 크다. 예를 들면 향산온량(香山蘊良) · 천의의회(天衣義懷) · 대위모철(大潙慕喆) · 고목법성(枯木法成) · 장로종색(長蘆宗賾) · 부산법원(浮山法遠) · 장상영거사(張商英居士) · 심문담분(心聞曇賁) 등 북송에서 남송 초기의 공안과 착어가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 중에서 향산온량의 어구는 『선문염송집』에 앞서서 고려 지겸(志謙)이 편찬한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1219년 간행) 가운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문염송집』에 인용된 어구는 그것과는 다른 상당어구(上堂語句)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어서, 향산의 완전한 어록이 당시의 고려에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찬가지로 천의(天衣) · 고목(枯木) · 장로(長蘆) 등의 어구도 대부분이 상당어(上堂語)로서 그 자료적 가치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대위(大潙) · 장상영거사(張商英居士) · 심문(心聞) 등의 어구는 대부분 염과 송의 착어이고 수량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잘 정리된 문헌이 고려에 전해지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그 인용문은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심문담분(心聞曇賁)과 혜심의 관계이다. 심문담분은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의 선승으로 황룡혜남(黃龍慧南)-회당조심(晦堂祖心)-영원유청(靈源惟淸)-장령수탁(長靈守卓)-무시개심(無示介諶)-심문담분(心聞曇賁)으로 이어지는 황룡파의 제6세이다. 그에 대해서는 『속고존숙어록(續古尊宿語錄)』 권4와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권17 등에 어구가 20여 편 알려지고 있지만, 『선문염송집』에는 100점 이상의 어구가 인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혜심이 심문의 완전한 어록을 소장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심문담분과 혜심의 관계를 알게 해 주는 것은 『종경록(宗鏡錄)』(961년경 간행)이다. 『종경록』은 일찍부터 고려에 전해졌는데, 혜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진각국사혜심어록(眞覺國師慧諶語錄)』을 보면 『종경록』에서의 인용이 대단히 많다. 이뿐만 아니라 혜심은 1213년에 조계산 수선사에서 『종경촬요(宗鏡撮要)』를 간행하고 있는데, 『종경촬요』를 처음으로 편집 · 간행한 사람이 바로 심문담분이다. 따라서 혜심은 『종경록』과 『종경촬요』를 통해서 일찍부터 심문담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혜심이 한때 거주하였던 지리산 단속사(斷俗寺)는 일찍이 대감국사(大鑑國師) 탄연(坦然, ?∼1158)이 교화를 떨친 곳인데, 탄연은 심문담분의 스승이었던 무시개심(無示介諶)과 서신을 통한 교류를 했던 적이 있다. 이를 통해서 보면 혜심 당시의 수선사와 『선문염송집』의 가풍(家風)을 알기 위해서는 임제종 황룡파와의 관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선문염송집』은 간행 이후 고려와 조선의 선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혜심의 문인인 각운(覺雲)은 『선문염송집』에 주석을 붙인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를 간행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전서』 제5책에 실린 것은 혜심의 『선문염송집』에 각운의 『염송설화』를 합한 『선문염송염송설화회본(禪門拈頌拈頌說話會本)』이다. 『선문염송집』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과 함께 선승들에 중요시되어 조선시대에는 선과(禪科)의 시험 과목이 되기도 하였고, 17세기 초부터는 조계종 강원(講院)의 교과목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간행된 유일한 공안집으로서, 그 양이 대단히 방대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나아가 현존하지 않는 문헌에서 인용된 내용도 많아 동아시아 선종사 연구에 있어서도 자료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이 책은 처음 간행된 이후 고려 · 조선시대를 통해서 승려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므로 고려 후기 이후 우리나라 불교계에서의 사상과 선수행, 특히 고려 후기 공안 참구의 성격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