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청대 천화장주인이 지은 재자가인소설(才子佳人小說) 『평산냉연』(20회)을 번역한 책이다. 『옥교리(玉嬌梨)』의 자매편인데, 조선에 언제 들어와 읽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김춘택(金春澤, 1670∼1717)의 『북헌잡설(北軒雜說)』에 제목이 보이고, 『정조실록』에 이상황(李相璜)과 김조순(金祖淳)이 한원(翰院)에서 숙직할 때 『평산냉연』을 읽다가 정조에게 들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7∼18세기에 사대부들에 의해 탐독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글필사본은 낙선재본으로 10권 10책이 장서각에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전체 4책 중 권3이 유실된 3책본이 있다. 책 마지막에 무진년에 필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무진년은 1808년이나 1868년 가운데 하나인 듯하다.
낙선재본은 완질본으로 정갈한 궁체로 쓰여 있다.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하였지만 서사성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생략하기도 하였고, 생경한 중국 어휘들을 조선의 언어 환경에 맞게 바꾸어 번역하기도 하였다. 사용된 어휘와 문법 현상들로 볼 때 18세기에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산냉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나라 때 재성(才星)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길조가 나타나자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징조로 해석한다. 이때 황제가 신하들에게 「백연시(白燕詩)」를 짓게 하지만 아무도 지어내지 못하자, 대학사 산현인(山顯仁)의 딸 산대(山黛)가 시를 바친다. 황제는 산대에게 ‘홍문재녀(弘文才女)’라는 칭호를 내린다. 산대의 시와 이름이 장안에 널리 알려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를 구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온다. 한편, 강도현(江都縣) 냉신(冷新)의 딸 냉강설(冷江雪)은 산현인의 부중으로 팔려가나, 미모와 재주를 겸비하여 산대와 지기(知己)가 되고 산현인의 수양딸이 된다. 냉강설의 뛰어난 시재(詩才)에 대해 황제는 ‘여중서(女中書)’라는 호를 내린다.
송강(松江) 화정현(華亭縣)의 재자 연백함(燕白頷)은 이부(吏部)에서 시행한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한다. 그리고 연백함과 낙양(洛陽)의 재자 평여형(平如衡)은 서로의 재주를 확인하고 가까운 지기가 된다. 두 사람은 산대와 냉강설의 재주를 흠모하여 찾아가 시재를 겨루고자 한다. 그러던 중 장인(張寅)이란 사람이 산대에게 청혼하기 위해 옥척루에 찾아갔다가 조롱만 당하자 원한을 품고 산대가 소년들과 어울려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상소한다. 이때 연백함과 평여형이 차례로 급제한 과거시험 결과가 발표된다. 천자의 주선으로 산대는 연백함과, 냉강설은 평여형과 각각 혼인한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편안한 여생을 보낸다.
『평산냉연』은 재자와 가인의 연애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소설로, 작품 제목은 주인공 평여형, 산대, 냉강설, 연백함의 성에서 따온 것이다. 일반적인 재자가인소설처럼 성격과 기능이 정형화되어 있지만, 여주인공이 시재가 뛰어나고 지혜롭고 총명하며 용기 있고 적극적·자주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남녀 간 사랑의 전개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만남, 헤어짐, 장애 극복, 과거 급제, 결혼으로 이어지는 서사구조를 가지는 전형적인 재자가인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찍부터 동서양에서 널리 읽혔는데, 일본에서는 『박재서목(舶載書目)』(1754)에 서명이 보이고 18세기에 이미 유럽의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다. 조선에는 17세기에 전해졌고 18세기에는 광범위하게 독자층을 형성하여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