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0년(현종 11)에 학종(學宗) 비구(比丘)가 중심이 되고, 광현(廣玄), 성열(性悅), 덕진(德眞) 등이 참여해 조성한 불교 의례용 가마 2기인데, 조성은 불영사가 아니라 원적산 대승암에서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가마 조성 기술자가 대승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영사(佛影寺) 불연(佛輦)은 전체적으로 난간을 두른 집 모양으로 생겼는데, 안에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앞뒤에 두 개씩 네 개의 긴 손잡이 맨 끝에 용두(龍頭)를 조각하였으며, 끈으로 매어서 운반하도록 만든 가마채가 있다. 받침대는 몸체를 올려 놓기 위한 누각의 난간 같은 형태로 만들었으며, 앞뒤에 난간에는 연꽃을 장식하였다. 받침대와 손잡이 부분은 붉은색 칠을 하였다.
몸체는 네 기둥에 창이 있는 벽체를 만들고 그 위에 지붕을 올려놓았다. 양측면 창에는 육각형의 그물망을 치고 그 중앙에 동경(銅鏡: 거울) 형태의 청동판(靑銅板: 지름 14.9㎝)을 달았으나, 현재는 한 쪽만 남아 있다. 앞뒷면 창은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다. 벽체에는 화려하게 여러 가지 꽃문양을 양각 또는 음각으로 처리하여 채색하였다.
지붕은 둥근데 바깥은 녹색비단으로 처리하였으며, 상부에는 노란색 복련(覆蓮) 위에 붉은색 연봉(蓮峯)을 세워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붕의 네 모서리에는 봉황의 머리를 끼울 수 있게 구멍을 뚫었는데 지금은 3개의 봉황 장식만 남아 있다. 지붕의 내부에는 대나무로 엮어 지붕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사찰 의례 연구와 조선시대 불교 목공예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균형미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세부 조형에 있어서도 나무로 얽어 만든 궁륭형 지붕과 봉황 조각, 청판머름 조각, 가마채의 용두 장식, 난간 장식 등에서 보이는 조형미와 조각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특히 불연의 몸체 주렴(珠簾)에 동경을 매달았음을 보여 주는 최초의 사례로, 이는 불상의 양면원경(兩面圓鏡)이나 불화 복장낭(腹藏囊) 앞에 매단 동경과 같이 무명(無明)을 밝히는 역할과 불교적 상징성이 담겨 있다.
예배의 대상을 의식 도량으로 시련의식(侍輦儀式)에서 쓰이는 매우 중요한 의식 법구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불연 중 형태가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1670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 주는 묵서 기록이 있어 주목된다.
불영사 불연은 제작 연대를 확실히 알 수가 있어서 유물 양식의 편년을 설정할 수 있고, 시주질(施主秩)을 통하여 불영사의 알려지지 않은 승려의 계보 등을 알 수 있어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이 불연은 바닥에 쓰인 명문에 의하면 1668년(현종 9)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학종 스님이 당시 경상도 양산, 울산, 강원도 울진 등 여러 곳에서 시주를 받아 1670년에 2채의 불연을 완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제작 연대와 시주자가 나타나 있어서 유물 양식의 편년을 설정할 수 있고 시주질을 통하여 불영사의 알려지지 않은 승려의 계보나 울진, 울산, 양산 지역의 불교 신앙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각 수법이 정교하고, 현재까지 알려진 불연 가운데 연대가 확실하므로 불교 의례 연구 등 불교사와 조선시대 목조공예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07년 1월 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6월 23일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